▶ 한인 정치학자에게 듣는 동북아·한반도 정세
▶ 이채진·곽태환 교수 2010년 신년특별대담
남, 실용노선… 핵폐기·경제지원 연계
북, 화해의 손짓… 남북관계 개선 기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안개 속이다. 보스워스 대북 특사가 최근 북한을 다녀온 뒤 북미간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가 싶더니 북한제 미사일을 실은 수송기가 태국 방콕 공항에 억류돼 국제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본보는 한인사회의 대표적 정치학자들로 꼽히는 이채진 클레어몬트 맥키나대 석좌교수와 곽태환 이스턴 켄터키대 교수의 특별대담을 마련, 동북아 정세를 정리하고 2010년 전망을 들어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이채진 교수: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 남북관계가 상대적으로 경색돼 있다. 과거와 달리 대북문제에 있어 보다 더 강경하고, 실용·상호주의를 추구해서 그동안 특별한 돌파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대청해전을 제외하면 군사 충돌도 없었다. 긴장은 계속되지만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 새해에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
▲곽태환 교수: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행동은 실용주의가 아니라는 게 일부 진보학자들의 생각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강경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다만 DJ 서거 후 북 조문단이 남쪽에 온 뒤 북이 먼저 대남정책을 획기적으로 수정했다. 대통령, 통일부장관 만나 정상회담까지 제안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 걸 보면 북이 다급했나 보다. 이런 때 우리 정부가 좀 더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을 취했으면 한다.
▲이: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북핵 문제를 어떻게, 누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핵 문제를 보는 남북의 입장이 천양지차다. 현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나와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는데
▲이: 남북문제와 북핵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자는 그랜드 바겐이라는 개념 자체에는 별 이의가 없다. 그랜드 바겐은 중요 현안을 일괄적이고 포괄적으로 타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얼 내포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입장을 취하기가 어렵다. 6자회담 당사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일괄 합의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북에서는 ‘허망한 꿈’라고 얘기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나오기까지 상당한 애로가 있을 것이다.
▲곽: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뉴욕 연설에서 그랜드 바겐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할 때 내용은 ‘선핵 폐기 후 경제지원’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은 ‘핵 폐기와 동시에 경제를 지원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로 변형됐다. 이유는 미국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그랜드 바겐의 문제점은 로드맵이 결여돼 있고 관련 4개 국이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북한도 거절했다. ‘비핵개방 3000’과 다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 큰 문제는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청사진이 없는데 어떻게 북을 설득하겠나.
-북한 내부사정은 어떠하나
▲곽: 북이 8월부터 갑자기 화해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북의 대외정책을 북한 내부사정과 연결해 보면 경제문제가 큰 이슈다. 식량 부족, 인플레 문제가 심각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화폐 개혁이 단행됐다. 후계자 문제도 화해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선군정치’라고 해서 군인들 얘기 듣고 장거리 로켓 발사하고 2차 핵실험한 결과가 강력한 제재를 담은 ‘우엔 결의안 1874’로 이어졌고 북 내부사정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김 위원장이 압박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북미관계, 대남관계가 개선돼야 한다. 북한 내부 상황이 김 위원장의 인식을 많이 변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유화정책으로 전환됐다.
▲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외부에서 보는 사람 사이에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다. 내부적으로는 선군정책을 강력히 실행해서 2012년까지 성공시키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면에서는 경제 제재나 그 동안 해온 정책의 실패로 상황이 호전되고 있지 않거나 악화되고 있다. 이런 내부적인 상황들이 가장 애로다. 화폐개혁도 이런 견지에서 나온 것이고 후계자 문제도 화폐개혁과 관계가 있다. 김정은 문제도 추측은 하지만 공개적으로 얘기하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정식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
-미사일 및 핵실험 쟁점으로는 뭐가 있나
▲이: 북한은 2009년 여러 차례 미사일 발사를 했다.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공개 발표했다. 이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은 자위권 확보라는 측면이다. 둘째는 북미 대화 촉진을 위한 정책적 고려였을 수 있다. 셋째는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라는 불안요소가 있었기에 군부를 통제해 권력을 확고히 하고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해 남으로 하여금 양보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처럼 미사일과 핵개발은 다목적을 위한 북의 행동 양식이다. 유엔결의안 1874호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15개 회원국 만장일치 합의됐는데 이것은 북한의 군사외교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중국은 초기에는 군사력을 통한 제재를 반대했지만 초안이 완화된 이후 동조했다. 북중관계가 미묘하게 됐다.
▲곽: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김 위원장이 과연 군부를 통제하고 있었나 의심을 해봤다. 군부 내 강경파가 강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군부 지지를 얻기 위해서 원하는 대로 해 준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선군정치에서는 군부의 역할이 대단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강력한 유엔결의 1874 제재를 가져왔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다면서 유엔 제재를 원했을까? 1874 제재는 김 위원장 자신의 목을 조르는 거다. 그러므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자위력을 가져온다고 하는 북한의 주장은 억지다. 김 위원장은 유엔 1874 제재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스탈린이나 모택동 등 과거 공산 정권들도 군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군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군사 실력자들의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고 군부 이익을 고려해 주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결정이 중요하지만 국방위원회 내 다른 위원들과 군 수뇌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군부 통제 여부에 대한 대외적 증거는 없다. 김 위원장은 정권 유지를 위해 군의 움직임을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9년 북미관계를 돌아본다면
▲이: 오바마 정부에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했으나 1년 동안 크게 한 것이 없다. 이유는 정책 우선순위가 경제였고 외교에서는 이라크, 아프간, 이란 등에 급했기 때문에 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지난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문한 뒤부터 미국 입장이 유연하게 됐다. 과거에는 6자회담 틀에서만 대화를 하겠다고 하다가 양자회담도 하겠다로 변했다. 앞으로 북한 문제를 외교정책 순위에서 위로 올릴 것이다. 현상 유지만 해도 괜찮다. 앞으로 후속조치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곽: 미국은 어디까지나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회담을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 리근 국장과 성 김 과장이 합의했다고 하는 사항을 보면 두 번 회담까지는 한다고 했다. 그래서 후속회담이 있을 것 같다. 후속회담이 열리면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후속회담이라는 것이 적어도 2번이고 고위급, 장관급 회담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에나 6자회담이 열리지 않을까. 북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북중관계가 미묘하게 바뀌고 있는데
▲이: 중국이 없으면 북한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북한의 경제적 생존에 중국이 절대적이다. 외교, 핵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이 중국 입장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북-중간에 알력, 긴장, 정치적 대립도 있다. 유엔 제제도 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찬성한 걸 봐도 그렇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생존하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북한이 살아남을 정도만 지원해 주고 있다. 북한 무역의 60~80%가 대중국 무역이다. 특히 변경 무역은 북한에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와서 중국이 북한의 광산 개발권도 가지게 됐고 원자바오 총리가 갔을 때 압록강 다리 건설도 합의했다. 북에 대한 경제 지원 범위도 확장됐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에서 원하는 모든 걸 주는 건 아니다. 북한이 원하는 만큼 안 되니까 오해의 소지가 있다.
▲곽: 중국은 북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유엔 결의안 1874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중국으로서는 딜레마다. 그렇다고 중국이 1874에 적극 호응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은 적극 호응하지만 대북 지원 관련 이슈는 적당히 넘어가고 있다. 압록강 다리 건설을 위해 2,000만달러 지원을 약속했고 인도주의적 식량을 지원했다고 보도되는데 이런 것들은 1874에 위반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다른 아이템이다. 중국이 강력히 추진하는 건 금융제재다. 금융제재는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금융제재로 인해 북한이 무기 판매대금을 회수할 수 없다. 북한이 보스워즈 대사에게 금융제재 해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제재와 대화라는 ‘투 트랙 전략’을 쓰겠다며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는 1874 제재를 거둬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화해손짓을 보낸 배경에는 금융 제재가 큰 몫을 했다. 무기 판매대금 10억달러가 안 들어오면 북한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이: 중국은 경제 발전에 걸맞는 군사적, 외교적 역량을 확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더욱 입김을 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우리 민족 이익과 반드시 합치하지는 않다.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곽: 강조하고 싶은 것은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은 아직 살아있다. 2003년 8월부터 6년 동안 여기까지 왔다. 한반도 비핵화, 9.19합의는 지속적으로 존중되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우선 쟁점은 신고된 HEU에 검증 방식이 6자간 합의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2단계 핵 불능화가 끝난다. 이후 3단계 해체까지 들어가서는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 새로운 합의 때 ‘포괄적 패키지’를 제시한다. 5자가 합의한 걸 북한에 제시하게 되면 거기에 많은 이슈가 들어가 있다. 그런 식으로 차기 회담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나는 원래 6자회담보다는 4자회담을 주장했다. 4자회담을 재개해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오면 일본과 러시아를 초대해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6자회담은 구조적으로 좋은 회담 양식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6자회담을 통해 완전한 합의를 이루기란 요원할 거로 보고 있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와서는 핵 폐기에 중점을 두지 않고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 무기(WMD) 확산 방지로 정책의 무게가 넘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북이 깨끗하게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군사적인 방법인데, 아프간 문제로 때문에 미국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 폐기보다는 현상을 ‘고정’(contain)시키고 무기나 기술을 해외로 반출하지 못하게 하는 차선책으로 넘어갈 것이다.
▲곽: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하고 3남 정은이 계승해 군부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 군부 입김이 너무 커지게 되고 문제가 생긴다.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북미 평화협정에는 반대한다. 법적으로, 실질적으로 정전협정 당사자는 미, 중, 남북한 4자가 돼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두 가지 트랙에서 다루어야 한다. 남북간 트랙과 4자간 트랙에서 평화체제 구축을 해야 한다.
남북한 트랙에서 기본합의서 2장은 불가침 선언이고, 9~14조는 군사 긴장완화 방안인데 남북이 성실히 이행하면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상호양보와 타협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로 나가는 길을 마련할 수 있다.
-바람직한 남북관계는
▲이: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것은 남북이 상부상조하고 평화 공존해서 평화 통일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남북이 모두 현재 주장을 지양하고 양자가 수락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가면 좋겠다. 특정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평화 협력하는 것이 양쪽 모두 이익이고 민족 장래를 위해서도 좋다.
▲곽: 새해에는 남북·북미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해 남과 대화하고 북미대화 과정에서 양보하고 핵 포기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남북이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한다.
<정리 정대용·사진 이은호 기자>
■곽태환 교수
▲1938년생
▲클레어몬트 대학교 박사(국제정치)
▲이스턴 켄터키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통일연구원장
▲현 남북평화사업의료지원본부
이사장 겸 상임대표
▲현 통일전략연구협의회(LA) 공동회장
■이채진 교수
▲1936년생
▲서울대 정치학과졸
▲UCLA 정치학박사
▲CSU 롱비치 사회과학대 학장
▲캔사스대 문리과대학 부학장
▲클레어몬트 맥키나대 국제전략문제연구소장
▲현 클레어몬트 맥키나대 국제정치학 석좌교수
그동안 여러차례의 남북 장관급 회담과 경제협력회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지만 최근들이 남북관계는 경색돼 있다. 2000년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도중 수십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
지난달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한에 전달할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 40만명분과 리렌자 10만명분을 실은 냉장트럭이 개성으로 향하고 있다. <본사 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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