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유죄판결 2회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무효화
대형로펌의 자원봉사 무료변론 대상으로 선정된 덕분
가난한 피고에 대한 미사법제도의 고질적 폐단 드러내
1977년 92세 노파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혀있었던 지난 26년 동안 듀이 보젤라에게도 몇차례 석방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90년 재판 중엔 여러 번 사전형량조정제인 플리바겐 제의를 받았고 4번의 가석방 청문회 때에도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면 석방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내가 짓지 않은 죄를 자백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사건 발생 당시 18세였던 보젤라는 이젠 50세 장년이다. “내가 무죄라는 걸 주장하다 감옥에서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짓지 않은 죄 자백할 수 없었다”
플리바겐 거부, 끝까지 무죄 주장
복역 중 학·석사학위 취득, 교사와 결혼도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10월28일 뉴욕 더체스 카운티 법원 앞. 드디어 자유인이 된 보젤라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아내와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한 판사가 그에게 유죄평결을 내린 두 차례의 재판에 대해 무효화 판결을 내려준 것이다.
보젤라의 케이스는 미 사법제도가 안고 있는 너무나 낯익은 악몽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피고, 엉성한 수사, 의심스런 증언, 은폐된 증거 등이 복합되어 이 같은 부조리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DNA 증거가 없던 이 케이스에선 ‘작은 기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이 사건파일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유죄평결이 너무 석연치 않다고 느낀 그 경찰이 폐기하지 않고 은퇴 후까지 간직해온 단 하나의 사건 파일이었다.
뉴욕 더체스 카운티내 퍼킵시에 거주하던 92세의 노파 엠마 크랩서가 살해된 것은 1977년이었다. 인근 빙고모임에 갔다가 한밤중 귀가한 크랩서는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전기 줄에 묶여 질식사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크랩서 살해 용의자로 보젤라가 체포된 것은 1980년이었고 첫 유죄평결을 받은 것은 1983년이었다.
수사당국은 경범전과를 가진 흑인 보젤라가 크랩서의 빈 아파트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살해했다고 단정했다. 검찰은 전과를 가진 2명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계속 말을 바꿔 신뢰하기 힘들었던 2명의 증인은 그 증언으로 자신들의 형량을 조정받기로 합의한 사람들이었다. 보젤라에 대한 물증은 처음부터 없었다. 대신 현장에선 다른 사람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후에 같은 동네에서 거의 동일한 수법의 살인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은 도널드 와이스의 지문이었다.
보젤라의 첫 재판에서 흑인들이 배심원단에서 부당하게 제외 당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오면서 보젤라 케이스는 1990년 재심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평결결과는 다시 유죄였다.
그 후의 ‘행운’이 없었더라면 보젤라는 아직도 감방에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 행운은 2007년 잘못된 유죄평결을 다루는 법률봉사단체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와 접촉하면서 왔다. 보젤라 케이스에 대한 모든 물적 증거가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 단체는 유명 대형 로펌 윌마헤일에 무료변론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로펌의 변호사들은 이 케이스 해결을 위해 2,500시간을 소비했다. 통상대로 부과한다면 변호사 수임료는 95만달러, 가난한 죄수에겐 꿈도 꾸기 힘든 서비스다.
변호사들이 만난 사람 중엔 아서 레굴라라는 은퇴한 퍼킵시의 경찰이 있었는데 그가 또 하나의 행운을 선사했다. 폐기된 줄 알았던 오래된 사건 파일을 내민 것이다. 파일엔 검찰이 보젤라의 변호사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보젤라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들어 있었다.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 10월14일 주대법원의 제임스 루니 판사는 보젤라가 부당하게 유죄평결을 받았다고 판결했다. 28일의 히어링에서 더체스 카운티 검찰은 보젤라의 유·무죄에 대한 소견을 말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재심을 하기엔 남은 증거들이 너무 부족하다고 밝혔다. 보젤라는 즉시 석방되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보젤라는 허송세월을 보내진 않았다. 무엇보다 공부를 시작했다. 학사학위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극에도 소양을 쌓고 복싱을 배워 교도소내 헤비웨이트 권투 챔피언을 따냈다. 1996년엔 복역 중인 오빠를 면회 온 초등학교 6학년 교사 트리나 분과 사랑에 빠져 결혼도 했다. 그는 앞으로 청소년 선도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자신을 이같은 케이스에게 얽혀들게 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서다.
그가 석방되던 지난 28일 법정에는 가족과 친구만이 아니라 그가 유죄평결을 받았던 첫 번째와 두 번째 재판에서 변호를 맡았던 두 명의 변호사들도 나와 감격의 포옹을 나누었다.
보젤라는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케이스를 교훈 삼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싸울 것을 당부했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을 때도 많았지요. 수없이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끝날 것인가, 과연 끝이 나기는 할 것인가…그리고 오늘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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