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이 아니라 부동산과 관련된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 영국의 유럽 대륙 침공은 과거와 같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90년대부터 2006년까지 영국의 부동산 붐은 영국인들이 프랑스나 스페인에 주거용 주택이나 별장을 사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와 함께 부동산 버블이 터지고 파운드화가 추락하면서 해협을 건너 대륙에 간 영국인들은 난감해 하고 있다. 일부는 이미 영국으로 돌아왔고 다른 사람들은 집값이 떨어져 발이 묶이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일부 지역에는 영국인들의 유입과 함께 이들을 상대하는 비즈니스도 늘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영국인 철수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일부 영국인들은 경제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륙에 머물며 자기 꿈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번잡함·범죄 피해 프랑스 시골로 이주
파운드 추락·금융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 늘어
1996년 패트리셔와 스티브 맨스필드-디바인 부부는 프랑스 북서부 오른 지역의 생시메옹 마을에 있는 500년이 넘은 낡은 농장을 샀다. 런던의 혼잡함과 대처 이후 사회적이라기보다 기업적으로 변한 영국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패트리셔는 과거 언론 분야에서 일한 자기 삶을 “연옥”이라고 불렀다.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다 1999년 프랑스에 영구 정착했다. 고양이 6마리, 개 한 마리, 뱀과 사슴, 부엉이가 가끔 찾아오는 2.4에이커 넓이의 4베드룸 농장을 개조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2007년부터 유로화가 파운드에 대해 30%나 오르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책을 쓰고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살고 있는 패트리셔(46)은 “환율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말한다. 남편도 글을 쓰는 사진작가다.
“이렇게 상황이 나쁜 적은 없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보석도 만들도 과일도 기르며 파운드로 버는 수입을 보충한다. 여행 같은 사치는 당분간 보류다. 다른 지역과 같이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생시메옹을 떠나 대도시로 갔다. 남은 사람은 농부들과 스몰 비즈니스, 그리고 영국인들뿐이다. 이 마을 총 250 가구 중 1/5이 영국인이라고 한다.
유럽 연합 통계에 따르면 2005년 프랑스에 사는 영국인들은 13만3,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20만5,000명의 영국인이 사는 스페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2008년 스페인 내 영국인 수는 35만4,000으로 늘어났다. 프랑스 통계는 없지만 20만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상당수는 별장 소유주들이다.
대다수 영국인들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와 브레타뉴 인근 항구와 “도르도뉴셔”로 불리는 중앙 남부 도르도뉴 지역, 그리고 남쪽 프로방스에 몰려 있다. 최근 이들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미가 보이지만 대거 이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과 유럽 대륙 간의 이사 짐 운송 전문 회사인 ‘로드 어헤드’사의 그렌 카바나 소장은 1년 전부터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그녀는 프랑스로 오는 영국인 수는 줄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영국인들을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비즈니스는 2년 전에 비해 50%가 줄어들었다. 이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요금을 15% 낮추고 가족 전체나 은퇴자들이 시골로 내려가는 것보다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전문직 종사자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프랑스 북서부 페이 드 라 르와르 지역의 인구 1만5,000명의 소도시 마옌에 있는 유로-마옌 협회 회장인 니콜 드벨-레글(52)은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500명으로 급증했던 회원 수가 지금은 363명으로 줄었다고 말한다. 이 협회는 주로 영국인인 외국인과 프랑스인과의 교류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협회 부회장인 폴 클리만스(64)는 “영국인들은 더 이상 오지 않으며 이들을 대신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 2,500명의 예쁜 마을인 라세-레-샤토에 집을 사기 위해 리버풀에 있는 자기 집을 팔았다. 그는 연금의 구매력이 줄기는 했지만 여기 사는데 만족하고 있다.
깨끗한 잔디와 장미 정원, 아름다운 성에도 불구, 이 마을은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일부 가게는 최근 문을 닫았다. 인근 작은 마을인 쿠에메-보세에서 크리스 워딩턴(48)은 잡화점 겸 작은 바인 ‘르 로칼’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일요일에는 지역 영국인들을 위해 커리도 팔고 영국식 로스트 요리도 제공한다. 생선과 칩을 주는 밴이 2중리에 한 번 들른다.
그는 런던 북부 밀턴 케인스의 “교통과 기물 파손, 마약”을 피하고 아내와 딸에게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이리로 왔다. 그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환율, 관광객 감소, 금연법 제정 때문에 “작년은 끔찍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찍 은퇴한 후 이리로 온다. 일부는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방스 지역 코티냑에서 영국인 고객들을 상대로 재정 상담을 해주고 있는 켄팅턴 사의 창업자 랍 켄트는 “생활 방식이 바뀌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호사스런 생활을 기대하고 이리 오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곳에 사는 영국인들은 은퇴자, 이혼자, 잡일 하는 사람, 예술가, 전과자, 교사, 트랙터 운전사, 집에서 일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프랑스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부는 앤드루 맥나마라(40)처럼 영국 일자리를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하다. 수년전 부동산이 절정이었을 때 집을 팔고 아내와 네 딸과 함께 프랑스로 왔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소방서 일자리는 놓지 않고 있다. 그 전에는 차와 페리로 190마일을 통근했었다.
프랑스 사람 입장에서 보면 영국인들의 이주는 장단점이 있다. 일부는 이들에게 비싼 값으로 집을 팔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때문에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지역 주민이 고향을 떠난다고 말한다.
라세-레-샤토에서 옷가게를 하는 발레리 롱그레(46)는 “나는 영국인들을 좋아한다”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와 집을 사고 영국인들을 고용해 일을 시킨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별 혜택을 입지 못했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 친절하지만 양면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여기 머물 계획이다. 유로-마옌 협회는 최근 처음 ‘뮤직 홀에서의 저녁’이라는 행사를 가졌다. 아마추어들이 의상을 차려 입고 은퇴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벌링턴 버티’ 같은 노래를 불렀다. 피터 배티(72)는 “이곳은 우리가 8~10세 때 살던 링컨셔와 매우 닮아 있다”며 “오래된 가치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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