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활동과 사건들로 엮어본 미동부 한인 이민사
’조국독립위해 싸웠으나 조국품에 못 안기고...
해방과 더불어 이때까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여왔던 인사들은 준비가 갖춰지는대로 조국을 향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습득한 선진 문물을 끌어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불귀의 신세가 된 인재들도 있었다. 미국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기 때문에 현지에 정착한 경우도 있었지만 타의에 의해 귀국이 여의치 못한 나머지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인재들도 있었다.
이승만과 불화했던 재미작가 강용흘, 공산당으로 몰려
▲ 1970년 서울 펜클럽대회에 참석했던 ‘초당’의 작가 강용흘 가족, 왼쪽부터 시인인 부인 프랜시스, 장녀 루시, 강용흘.
1921년 미국으로 건너와 보스턴 대학에서 의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한 강용흘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편집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동양문학의 번역과 영문소설 창작에 전념했던 작가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초당(The Grass Roof)은 자신의 유년기를 소재로 한 자전적 장편으로 한국적 정서를 그려낸 뛰어난 작품으로 그가 뉴욕에 있던 1931년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10개국어로 번역돼 세계적인 작가로 각광을 받으면서 구겐하임상도 수상했다. . 1937년 발행된 동양인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 외에 동양의 시(1929),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1933년)등이 있고 1971년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번역했다. 그는 미국생활 50년중 대
부분을 뉴욕에 살면서 당대의 작가인 펄벅, 토마스 울프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초당의 명성 때문에 그는 메트로폴리탄 예술박물관에 취직이 되어 동양문화에 대한 평론도 했고 뉴욕타임즈에 시평을 쓰기도 했다.
2차대전 중에는 미 육군성의 출판책임자로 일하다가 해방후 한국에 잠시 파견되어 미 24군단 민간 고문으로 활약한 적이 있으나 이때 이승만과의 사이가 나빠져 그는 죽을때까지 이승만과 악연을 유지했다. 한국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한국정부로 부터 공산주의자로 몰려 때로 곤경에 처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이대통령의 독재를 자주 비판했으므로 이박사의 눈에 가시처럼 보였던 것이다. 50년간 수집한 장서 5천권을 고려대학교에 기증했던 그는 1970년 국제팬클럽 서울대회에 부인과 장녀를 데리고 참석했던 것이 고국을 본 마지막 기회였다. 뉴욕 롱아일랜드 헌팅턴에 오래 살았던 그는 말년을 플로리다에서 보내다가 1972년 12월11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국내음악가들 질시받은 안익태 귀국길 막혀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와 그 가족
평양 출신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 안익태는 숭실학교 2학년 재학중 3.1운동에 참가한 사유로 퇴학 당한후 일본으로 건너가 구니타치(국립) 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 배웠다. 1932년 도미하여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했다. 이무렵 그는 뉴욕에서 컬럼비아대 여자졸업생 클럽, 뉴욕신학교 코리언 나이트, 인터내셔널 하우스 등에서 첼로를 공연했으며 35년에는 뉴욕한인교회에 기숙하면서 애국가의 원곡인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했다.
몇년전부터 착상해 왔던 애국가 작곡을 마치고 36년 발표했다. 그래서 뉴욕한인교회를 애국가의 원산지로 주장한다. 이후 무대를 유럽으로 옮
겨 40년까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사사하면서 보조지휘자로 있다가 독일에서 독자적인 지휘활동을 했다.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스페인 출신 마리아 들로레스 탈라벨라와 결혼, 스페인 국적을 얻고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고 영국, 이태리, 미국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지휘 하기도 했다. 해방후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한국무대를 노크하면서 고국에 안기기를 희망했으나 국내 음악인들이 그를 질시, 냉대하는 바람에 귀국길이 막혔다.
6.25 전쟁당시 미국 순회공연을 가졌던 그는 60년대초 추억이 깃든 뉴욕을 찾아 뉴욕한인회 행사등에 부인과 함께 모습을 보였으나 말년을 마요르카 섬으로 돌아가 지내다 1965년 5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결국 타국을 떠돌며 조국의 품에 안기지 못한 아쉬움 속에 생을 마감했다.
군정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 이승만계 반대 부딛쳐 출국
▲서재필
해방된 조국에 서재필이 발을 디딘것은 1947년 7월1일이었다. 기선편으로 인천항에 도착한 서재필의 공식 직명은 군정 최고의정관으로서 미군정청 하지장군의 수석고문이었다. 당시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김규식의 적극 추천을 받은 하지장군이 미국무성에 상신하여 성사시킨 것이었다. 그를 위한 환영대회가 7월12일 서울운동장에서 대대적으로 열렸다. 이때 서재필은 김구와 김규식을 자주 만나면서 이승만과는 소원한 관계가 되었다. 이승만에게 있어 서재필은 다소 위협적이면서도 질시의 대상이 되었던것 같았다는게 당시 그를 측근에서 보필하던 비서 임창영의 증언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승만의 신탁통치 반대, 남한 단독정부 수립 노력이 결실을 보게된 반면 김구, 김규식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군정이 종식되고 5.30 선거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서재필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군정 최고고문직 임기도 끝났다. 그는 조국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이승만이 집권한 당시의 정치현실이 그의 잔류를 허용치 않
았다. 국내의 반대파, 특히 이승만계의 반대로 오래 있질 못하고 48년 10월 국내체류 만 1년2개월만에 그는 다시 인천 부두에 서게 되는 슬픔 모습이 되었다. 메디아 자택으로 돌아온 이후로 다시는 조국을 찾지 않은 서재필은 한국전쟁이 한창중인 1951년 1월5일 86세를 일기로 필라델피아 근교 노리스타운의 멍가머리 병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원자폭탄에 대한 엇갈린 반응
전쟁 종식 기쁨 반면 살상위력 개탄 여론도
2차 세계대전에 종지부를 찍은 미국의 원자폭탄에 대한 주된 반응은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기쁨이었지만 한편에선 반대의 소리도 있었다. 바티칸 교황청은 가공할만한 살상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의 사용을 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이로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 사이에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이 나왔지만 소극적인 표현에 그치고 말았다. 원자폭탄 설계자중의 한사람으로 폭격기에 동승했던 윌리엄 파즌스는 폭탄이 투하됐을때 밝고 눈부신 섬광이 순간 번쩍였고 1분 뒤 뜨거운 입자와 소용돌이치는 검은 구름이 지상으로 부터 3킬로미터 상공으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 구름 위로 6킬로미터 높이까지 버섯구름 같은 흰 연기가 피어 올
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연합군의 승리 소식을 들은 워싱턴지역 동포들은 미주 독립운동의 심장부인 구미위원부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함성을 지르는 시민들을 구경했고 기차역 근처의 와이니츠 랜턴이라는 식당에서 승전을 축하하며 점심을 함께 했다, 이자리에서 이승만은 앞으로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며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말을 들은 일동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아차릴수 없었으나 얼마 안가 38선이 생기고서야 그뜻을 알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승만은 국제정치를 보는 식견이 뛰어났고 앞날을 내다보는 시야가 넓었다고 할까. 그해 9월2일 일본의 항복식이 미주리함에서 거행되었고 연합군 사령관 매카더 장군은 한국을 38도선으로 양분하여 이북은 소련군이, 이남은 미군이 점령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얄타회담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우리 민족의 분단이 현실로 나타난 시점이었다.
조중무<언론인,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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