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순례의 길
이성재<성 김대건 한인 천주교회>
우리 일행은 아침부터 본격적인 이스라엘 지역 성지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유다 광야를 지나면서 이천년 전의 사해 구약사본이 발견된 “쿰란(Qumran)”에 들렀다. 이사야 예언서 두루마리가 1947년 양치는 목동에 의해 발견된 이곳은 기원전에 수도원이 있은 자리였다고 한다. 유혹의 산이라고도 불리는 예리고를 지나면서 세관장 자케오가 예수님을 보기위해 올라갔다는 “2000년이 넘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예수님의 승천 기념장소 “올리브 산, 주님의 기도문성당, 예수님 눈물성당, 겟세마네 대성전” 등을 순례 후 호텔에 짐을 풀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올리브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인근 지역이 다 현대 건물로 즐비해 있어도 이곳만은 이천 년 전 그대로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은둔과 기도를 위해 이곳에 오셨고 수난 당하기 전날 밤 가장 슬픈 수난의 시간을 체험하였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택한 곳이다. 올리브 산기슭에는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있었고 이곳에는 수많은 묘지봉군이 풀 한 거루, 꽃 한 송이 없는 삭막한 장소에 컨테이너를 한 층으로 따닥따닥 붙여 놓은 것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는 이들은 건너편에 있는 “엘 아크사 황금사원”을 바라보며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인간이 믿는 구세주의 진리와 그들이 말하는 구세주는 누구이며 우리들의 구세주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싶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루살렘의 많은 성지를 순례하고 있었다. 시온산위로 자리 잡고 있는 “최후의 만찬 경당, 베드로 회개성당, 성모님 영면성당” 등을 돌아보고 “통곡의 벽”에 손을 올리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십자가의 길, 골고다, 그리고 성묘성당”을 순례하는 순서였다.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비아돌로로사에서 눈물을 흘린다.” 라틴어로 “비탄의 길” 또는 “슬픔의 길”이란 뜻의 이 거리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집무실에서 골고다언덕까지 연결된 1.5km 정도의 길이다. 유태인들은 이 길을 지금도 성역화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우리는 이 길고 좁은 길 양쪽에 가난한 아랍인들의 의류상 등 각종 토산품을 파는 영세상이 즐비한 골목을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시작하였다.
십자가의 길 기도와 순례는 제1처에서 시작하여 “성묘성당”이 있는 제10처에 도착하면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기도하였다. 이곳에서 대리석 벽에 예수님의 성화와 핏자국이 담긴 것을 보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셨으며 십자가에서 내린 성시를 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듣고 성경으로만 읽어본 예수님의 생애를 직접 보는 것 같은 감명을 이곳에서 받을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너무 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조용한 기도나 묵상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예루살렘 성지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이곳에 며칠을 머물며 기도하고 묵상하며 순례를 해야겠지만 우리들의 일정은 너무 짧았다. 할 수 없이 다음날은 “예수님의 탄생지 베들레헴”을 잠간 돌아보고 “갈릴레이”로 향했다. 예수님이 태어난 성지라고 찾은 베들레헴은 이스라엘과 철저히 격리되어 베를린 장벽을 연상케 하는 높이 10m 이상의 콘크리트 벽과 철조망이 둘러싸인 팔레스타인 자치구 안에 있었다. 군데군데마다 있는 초소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성지에서 순례의 기쁨을 느끼기 보다는 종교와 이념,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아래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는 현실에 실망과 회의를 느꼈다. 1967년 6일 전쟁으로 요르단 땅이었던 이 지역을 이스라엘이 점령한 후로 오늘도 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땅의 주인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기 어려웠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 일행은 늦은 오후에 뜻 깊은 성지 “갈릴레이”에 도착하였다. 호수 옆 조그마한 도시 티베리아스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물 한 병에 $2.00씩이나 받고 파는 예루살렘에서와는 달리 이 호텔의 식당에서는 물은 물론 맥주에서 와인에 이르기까지 무제한 공짜로 대접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 이 식당의 주인은 유태인이 아닐 것으로 믿어보았다. 저녁을 먹은 후 갈릴레이 호수를 따라 산책을 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묵상의 시간을 가진 후 잠자리에 들었다.
예수님과 베드로 성인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갈릴레이는 호면이 해면보다 210m 이상 낮은 호수다. 티베리아스에서 호수를 따라 예수님 시대에 로마 고관들이 살았다는 부유한 도시 “가파르나움”으로 향했다. “가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도 많은 선행과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주 이곳을 드나드셨고 활동하였다는 기록이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호숫가에는 “멘사 도미니(Mensa Domini) 라고 불리는 크고 검은 현무암 바위위에 현대식으로 지은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멘사 도미니는 ”주님의 식탁“을 뜻하는 것으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이 성당은 베드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라는 명령과 함께 수위권을 받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름을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곳에서 베드로의 생선이라고 불리는 생선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흑돔 같이 생긴 생선이 통째로 기름에 튀겨 나왔다.
예수님께서 보리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빵의 기적성당”이 근처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참된 행복 선언 성당”이 호수 근처 팔복산 위에 있었다. 그곳에서 호수의 수원인 요르단 강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장소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고 요르단 강물에 뛰어들어 세례 갱신 식을 갖고 있었다. 티베리아스로 돌아오는 길에 다볼산(Mt. Tavor)에 올라 거룩한 변모성당을 순례하였다.
우리는 티베리아스에서 석양의 노을이 물결에 고요히 비치는 갈릴레이 호수를 조그마한 유람선을 타고 횡단하며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배를 타니 갑자기 선장이 태극기를 개양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모두 일어나 애국가를 불렀고 코끝이 약간 찡해짐을 느꼈다.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어부 베드로는 이 호수에서 밤새껏 그물을 던져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예수님께서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져보아라.”고 하였고 그렇게 하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그물에 잡혔다. 라는 말씀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이라 하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들의 짧은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오늘로 마지막 날이 되었다. 갈릴레이를 뒤로하고 가이사리아 항구 유적지를 돌아본 다음 갈멜산 혜안평야를 따라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곳 나자렛으로 향했다. 예수님이 살고 일을 했다는 집에는 목수 일을 하는 도구와 연장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이 탄생하리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장소에 세워진 “성모 명보 대성당”이 있었다. 여기서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모자이크 성모상이 벽화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의상으로 곱게 단장하고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가나 혼인잔치 성당”도 이곳에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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