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오클랜드 성김대건 한인천주교회 신자이며 한국 문인협회 샌프란시스코 지부 회장인 이성재 박사의 성지 순례기를 연재합니다. 이성재씨는 오세호 신부등 26명으로 구성된 오클랜드 한인천주교회 성지순례단의 일원으로 지난 10월 7일부터 성지중의 성지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요르단 지방을 10박 11일간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기는 이집트의 유대인 출애급 경로를 시작으로 모세의 발자취,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모세의 출애굽 기착지등 4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입니다.
’유대인들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순례의 길에 나서다’
오클랜드 성 김대건 한인 천주교회 성지순례단은 지난 10월7일부터 10박 11일간의 일정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지방의 “성지순례(Pilgrimage)”를 다녀왔다. 짧은 기간에 빡빡한 일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루어진 “거룩한 땅(성지- Holy Land) 팔레스티나(Palaestina)”를 순례하는 기회를 가졌다. 성지순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 성지를 찾아 여러 성역들을 방문하고 전례에 참석하여 그 곳에 얽힌 종교적 전승을 실존적으로 체험하고 신앙공동체의 정체성과 일체감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겠다.
성지순례의 기원은 구약에서 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즉 예수살렘을 향한 순례의 여정이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부활, 승천 후 성모님은 매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길을 찾아 가신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따라 밟은 길이 최초의 십자가의 길로, 그 길을 가장 처절히 사랑과 눈물로 걸으시면서 아들이 마지막 걸은 길 위에 떨어진 땀방울의 냄새와 핏방울의 흔적만이라도 찾으려하였다. 그래서 엄격한 의미에서의 성지순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티나 (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 지방의 성역들을 순례하는 것을 말하며 그 외의 순교, 기적 또는 성인들의 행적이 보존된 성역을 찾아보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성지순례라 말한다.
역사적으로 4세기경에 콘스탄틴 대제와 그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팔레스티나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곳에 “성묘성당”을 세움을 시작으로 성지순례를 활성화 시켰다. 그 후 예로니모 성인에 의해 이 지역들이 교회의 성지로 자리 잡게 되었고 성지의 범위도 넓어지면서 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진 로마로 순례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성지순례는 신자들의 의무라고 할 정도로 관습화 되었다.
당시의 성지순례는 긴 여행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야만 했으므로 그리스도교 신심이라는 의미와 극기와 고행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사회적 신분이나 빈부의 차별 없이 신자들은 고행자로서 하느님 앞에 동등한 영원의 구원을 위하여 거룩한 성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지순례를 미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평가하여 비판하였고 이들은 순례를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일부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순례를 통하여 얻어지는 영적인 은총도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드디어 이 거룩한 땅을 찾아보는 성지순례의 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을 거쳐 이집트까지 장장 18시간의 비행시간은 길었지만 처음가보는 이곳 성지순례의 기대감에 도취되어 피로를 잊고 있었다. 위선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고대불가사의의 하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둘러보고 증명사진을 찍은 후 국립박물관을 방문하여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집트 고대문명을 둘러보고 숙소에 들렸다.
다음날 아침에 유대인들의 출애굽 출발 장소로 알려진 이집트에서 우리들의 순례도 시작되었다. 카이로에서 한 시간 거리의 북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여 모세가 살았고 모세의 기도를 상징하는 “모세 기념성당”을 둘러보고 “예수피난 성당”을 찾아보았다. 이곳은 요셉 성인이 천사의 말을 듣고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을 피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데리고 이집트에 피신하여 잠시 머물렀고 파라오의 딸이 모세를 강에서 건져냈다고 전해지는 갈대 늪 옆에 세워진 고대양식의 교회였다. 그리고 마르코 사도의 무덤이 있는 “마르코 교회”를 찾아보았다.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버스에 올랐다. 모세의 출애굽 경로를 따라 광야 시나이반도로 출발, 긴 순례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수에즈운하를 옆으로 끼고 광야를 달리고 있었다. 컨테이너를 산더미 같이 실은 수많은 화물선이 줄을 이어 수에즈운하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에즈운하는 파나마운하와 달리 관문은 없지만 폭이 좁아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시나이 반도를 지나면서 불모지 속에 띄엄띄엄 있는 오아시스들을 보았고 모세가 사흘을 걸어서 찾아내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었다는 “모세의 우물 마라라”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쉬었다. 우리 일행은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한동안 달려 홍해 해변에 버스를 세웠다. 이곳 홍해는 파라오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아 오다 모세에 의해 수장되었다는 곳이다. 여기서 바닷물이 산 밑의 동굴로 들어가 돌아 나오며 뜨거운 온천수가 되어 흐르고 다시 바닷물과 맞닿는 곳에 발을 담가보기도 하고 그늘이나 쉴만한 곳이 없으니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화장실이 없어 모래언덕 너머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피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었다.
우리가 오후 늦지 않게 도착한 곳은 모세가 십계판을 받고서 시나이산 정상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한 곳으로 추정되는 시나이산 밑이었다. 여기서 허름한 방갈로식 모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새벽 1시에 기상하여 시나이산 등정을 준비하기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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