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청준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출간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책의 서술 방식이 그 답지 않아 보이고 또한 신자도 아닌 그가 어떻게 이같은 신앙 서적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 때문이다. 이 책이 뛰어난 기독교 문학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책은 기독교 문학에 들지 않는다. 다만 그는 기독교적 소재를 가지고 작가로서의 탁월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다. 책 제목에서도 충분히 암시하고 있듯이, 기독교는 낮은 데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벌레이야기’(밀양)를 통해서는 비판적 시각으로 기독교가 어떠해야 함을 말했으며, 반대로 이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통해서는 긍정적 시각으로 기독교가 어떠해야 함을 얘기하고자 했다. 즉 전자에서는 남이야 어떻든 자신이 평안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한 신앙인을 통해 기독교가 타인 존중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려고 했다면 후자에서는 소외 계층 사람들을 위해 힘썼던 한 신앙인을 통해서는 기독교가 낮은 데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볼 때 낮은 곳을 향하기 보다는 높은 곳을 더 향하고 있다.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 잘 되는 것, 세속적 축복과 형통을 위해 신앙이 마치 존재하는 듯한 면모를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 보다는 십자가를 통해서 세속적인 영광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더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실제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다. 신앙은 낮은 곳을 향하는 것이며 신자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책은 실화에 근거하여 집필되었다. 주인공 안요한은 세속적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세상의 높은 곳을 향하여 끝없이 질주해 나아가다가 어느 날 눈에 이상이 생기더니 앞을 보지 못하는 자가 되었으며 결국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목회자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가장 낮은 자 위치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그 줄거리다. 주인공은 육신의 눈이 건강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세계를 육신의 눈이 감기고 대신 영혼의 눈이 뜨여졌을 때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으며 또한 이전에 갖지 못했던 진정한 기쁨을 갖게 되었다.
명망 높은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한 지체장애인 공동체에 자신의 남은 생애를 모두 바쳤던 나우웬은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에서 “예수님은 권력의 권좌에서 무기력함으로, 위대함에서 왜소함으로, 성공에서 실패로, 강력함에서 연약함으로, 영광에서 치욕으로 옮겨가셨는데,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낮음의 길을 향해야 한다. 이는 지옥의 길이 아니라 천국의 길이라는 것을 이미 예수님은 보여주셨다”라고 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도 우리가 믿음을 도구로 삼아 세상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작가는 안요한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조망해 보임으로써 바로 이 사실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다. 내려올 때는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렵고 발을 헛디뎌 넘어져 다치기도 한다. 높은 산을 등정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는 일도 대부분 하산할 때다. 불신자들은 기독교인들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아우성이고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괜스레 비판적이라고 하면서 계속 더 높은 곳을 오르려고만 한다. 오늘날 기독교에 문제점이 있다면 열심의 미약 보다는 방향의 잘못에 있다. 방향이 낮은 곳을 향하지 않고 높은 곳을 향한다면 문제는 끊임없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일각에서 기독교가 귀족화, 권력화, 세속화되었다고 자성하면서 비기독교인들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려고 하는 신앙인들이 나타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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