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나는 할머니, 남동생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전주에 살고 있는 막내 고모네 집으로 가고는 했었다.
고모와 고모부는 변산반도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커다란 연꽃이 연못 가득 피어있던 덕진공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녔고, 여름 내내 맛있는 것도 참 많이 만들어 주었었다. 그렇게 며칠씩 고모네 집에서 뭉개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그을른 얼굴로 집에 돌아오면 여름 방학은 금세 훌쩍 지나가고는 했었다.
고모는 그 당시 스물 아홉 노처녀로 결혼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살면서 조카들을 무척 예뻐했었다. 가뜩이나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결혼식날, 고모가 시집을 가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아서 그 때 여섯살이던 나와 어린 남동생들은 하늘이라도 무너진듯 하루종일 악을 쓰며 울어 사람들의 혼을 빼 놓았기에, 고모부는 아직도 그 말을 꺼내며 웃으신다.
극성맞은 연년생 남동생들과 집안일에 엄마는 늘 바빴었고, 나는 고모와 할머니 손에 자랐다. 고모가 그렇게 시집을 가고 나니 집은 왜 그리 휑뎅그레 느껴지던지, 어린 마음에도 그 상실감으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듯이 참 외롭고 허전했다. 그래서 고모 방에 들어가 고모가 쓰다 두고 간 물건들과 듣던 음반들도 한참 만져보고, 고모 냄새가 배어있던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안고 자고 그랬었다.
그 때부터였던거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아프고, 그리고 가족들과도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건 말이다. 그리고 한글을 깨우치면서부터는 고모에게 늘 편지를 썼었다. 그렇게 온통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낸 시간들이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자, 어린 내가 고모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처럼 친정엄마도 한동안은 내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못했다 한다. 그리고 내가 썼던 일기장들과 작문 노트들, 이제는 들을 사람도 없는 음반들을 버리지 않고 박스에 잘 담아 십년 넘게 보관해 놓았었다. 나는 지난 여름방학에 가뜩이나 짐도 많은데 그 많은 작문 노트들을 가방에 넣어 들고 왔다. 뭘 어쩌자구 그렇게 많은 글들을 썼었나 싶었다. 이제는 짐도 줄이고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가족이라도 한 집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은 인생에서 얼마나 될까. 큰 아이가 벌써 열한 살이니 그 아이와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여행도 하며 함께 할 시간도 7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남동생들과 딱지나 치면서 근근히 살아가던 나에게 인생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준 예쁜 사촌 언니들과 함께 보냈던 큰 고모네서의 여름방학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나는 한 해 한 해 더운 여름을 보냈었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고모네 집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여름을 났던 사촌들도 친척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 만나다가, 내가 미국으로 오고나서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으니,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며 잘 살겠지 믿으며 사는 수 밖에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시장에 딸기가 처음 나오면 너 먹일려고 그 비싼걸 사왔었다. 너 하나도 기억 안나지?” “무슨 기억이 나겠어? 저 혼자 큰 줄 알겠지.” 여름방학에 고모집에 가면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나느냐는 고모에게 그럴때마다 나는 입을 삐죽거렸고, 할머니는 허허 웃으셨다. 그 때는 정말 몰랐었다.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나 혼자 저절로 큰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 해주고 싶다. 살아가면서 내가 흔들리고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은 주술처럼 나를 붙잡아 주었었다고……생의 어느 모퉁이 막다른 골목길에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고 싶었던 때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사랑의 기억들이었다고……
아주 오랜만에 고모에게 안부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그동안 그렇게 무심하더니 마흔이 다 되가서 네가 이제야 뒤늦게 철이 드나보다 하며 기뻐하실까, 아니면 너도 나이가 드는건가 싶어 조금은 쓸쓸해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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