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고유가가 미국을 바꿔놓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하면서 휘발유 평균 판매가가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는 등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준으로 유가가 뛰어올라 가계 사정을 압박함에 따라 석유 소비에 익숙한 미국인들의 삶과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미국민들의 석유 소비가 줄어들고 자동차 운행거리가 감소하는가 하면 유류 소비가 많은 대형차 판매가 급감하는 등 미국민의 삶이 변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맞춰 자동차 업체들은 픽업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줄이는 대신 승용차 생산 비중을 높이기로 하고 유가 급등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는 감원과 감편에 나서기로 하는 등 미국 산업계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미 정부와 의회는 에너지 절감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통한 석유소비 감축, 국내 원유 생산 확대를 통한 에너지 해외 의존도 낮추기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 고유가로 변하는 미국 사회 = 갤런당 4달러를 넘은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1년전에 비하면 30% 가량 올랐다. 자동차 이용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휘발유 가격의 급등은 가계 사정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이 되면서 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미 교통부가 지난달말 발표한 미국인들의 자동차 여행 거리는 지난 3월에 1년 전보다 4.3%(110억마일) 줄었다. 오일쇼크가 왔던 1979년 3월 이후 월간으로 처음이자 1942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반면 비싼 유류비 때문에 차를 집에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미국대중교통협회에 따르면 대중교통 이용은 전국적으로 올 1.4분기에만 3.3% 증가했다. 이는 최근 50년 사이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재택근무가 가능하거나 집에서 가까운 직장을 찾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또 골프용품업체 캘러웨이가 특정 드라이버들을 판매하면서 100달러 상당의 주유권을 주는 등 유류비 증가로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을 사로 잡기 위한 판촉 행사로 주유권을 지급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칠 줄 모르고 늘어나던 미국의 석유 소비도 줄어들고 있다. 미 에너지부는 5월말까지 4주간 하루 평균 석유 소비가 2천40만배럴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 줄었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유류비가 가정의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최악의 에너지가격 급등기보다도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알리안스 번스타인의 이코노미스트인 조지프 카슨은 미국인의 임금소득에서 유류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를 넘어 1974~75년, 1990~91년 유가 급등기의 수준을 넘어섰고 1980~81년 오일쇼크 당시의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전했다.
이 같은 고유가 부담은 미국인들의 소비 지출을 억누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1천500억달러의 세금 환급에 나섰지만 소비가 늘어나는 조짐이 별로 안보이는 것의 한 원인도 고유가 부담으로 주머니 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에 접한 뉴저지주 공영주차장의 경우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통행료(8달러)나 맨해튼의 비싼 주차비를 아끼기 위해 이곳까지 차를 몰고 와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주차장이 전에 없이 꽉차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제임스 해밀튼 교수는 유류비 지출이 오일쇼크가 왔던 1970년대 말과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왔다며 이로 인한 소비 위축을 우려하고 소비성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CNBC는 최근 전했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의 위축은 기업 실적 악화와 고용 감소 등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의 자동차 판매는 유류비가 많이 들어가는 픽업트럭과 SUV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10.7%나 감소했다. 이에따라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등은 대형 차량 생산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델타, 유나이티드, 컨티넨탈 항공 등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 항공사들은 최근 잇따라 감원 및 감편 계획 등을 내놓고 있다. 미 항공사들의 감원 규모는 올해 들어 2만2천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GM과 포드 등 미 자동차사들도 명예퇴직 등을 통한 구조조정에도 들어갔다.
◇ 미국의 고유가 대책 = 고유가에 휘청거리는 미국의 대책은 자동차 연비 상향조정을 비롯한 에너지 절감정책과 에탄올 등 대체에너지 개발을 통한 석유소비 줄이기, 미국 내 원유생산량 확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작년말 자동차 연비를 종전보다 40% 상향 조정하는 것을 비롯해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전구의 에너지 효율성도 높이는 등 석유 소비를 줄이고 대체 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에너지법에 서명했다.
에너지법은 2020년까지 모든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갤런당 25마일에서 35마일로 40% 높이도록 해 자동차 업체들이 반대했던 연비 기준 상향을 32년만에 통과시켰다. 미국은 새 에너지법 시행으로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량을 현재 보다 20%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미 교통부는 우선 2015년까지 승용차와 트럭 등 신차의 연비기준을 갤런당 31.6마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11∼2015년 연비 향상에 따른 원유 소비 감소 효과를 돈으로 환산하면 547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은 또 바이오연료 생산 역시 80억갤런에서 2030년 320억갤런으로 늘리고 대체에너지 사용 확대를 위해 에탄올 사용을 지금보다 5배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재생 에너지 부문은 풍력으로 지난 해 45%나 늘어났으며 새로 건설된 발전시설의 30%를 차지했다. 현재 풍력 발전량은 연간 약 1만6천메가와트로 전력 수요 총량의 1%에 불과하다.
또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미 원자력규제위원회에는 지난해 7개의 핵 원자로 건설 신청이 접수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국내 석유 생산을 늘려 현재 60%에 이르는 수입석유 의존율을 2015년까지 50%로 낮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만 심해유전 개발과 신기술 접목을 통한 노후 유전의 생산량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미 석유업계도 환경보호구역과 정부 소유 공유지 등 풍부한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시추가 어려운 지역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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