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민주 경선> 5개월 長征 종료..첫 흑인후보 탄생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 미국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사상 가장 길고도 치열했던 민주당의 경선이 3일 숱한 화제를 남긴 채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공식 경선전만 5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대권도전을 공식 선언한 시점부터 역산하면 무려 15개월간의 대장정이다.
오바마 의원이 1일 사우스 다코타주 유세에서 아기가 태어나 걷고 말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 비유가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긴 시간이다.
민주당의 각본 없는 경선드라마는 처음부터 흥행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 남성에 비해 성적 소수자인 힐러리, 백인 주류사회로 볼 때 인종적 소수자인 오바마가 처음으로 전대미문의 대권도전에 나선다는 설정 자체가 드라마틱했다.
경선드라마는 회가 거듭할 수록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오바마의 예정된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 힐러리가 계속해서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아 관객인 유권자들은 뻔한 결말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인내를 감수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사람은 모두 8명.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조지프 바이든, 크리스토퍼 도드, 마이크 그레이블 상원의원,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 빌 리처드슨 멕시코 주지사가 군웅할거식으로 신년벽두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그 해 7월 24일 첫 공식 토론회를 갖고 유권자들 앞에서 자웅을 겨뤘다. 미국 선거사상 처음으로 `유튜브’를 통한 질문도 이뤄져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선두그룹을 솎아내는 데는 첫 토론회만으로도 충분했다. 첫 여성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와 첫 흑인대통령에 도전하는 오바마가 양강구도를 형성한 가운데 2004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에드워즈 전 의원이 그 뒤를 쫓는 양상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1월 3일 아이오와주의 첫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오바마가 승리하고, 철의 여인 힐러리는 `눈물’ 덕택에 당초 예상을 깨고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군소주자들의 낙마가 줄을 이었다.
바이든, 도드 의원이 후보 리스트에서 사라졌고, 리처드슨 주지사도 꿈을 접었다. 오바마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에는 이곳 출신인 에드워즈 전 의원이 선택의 여지없이 경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로써 오바마-힐러리의 양자간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두 사람은 2월5일 뉴욕, 뉴저지, 조지아,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등 23개주에서 일제히 경선이 실시된 `슈퍼화요일’에서 정면 충돌했다.
오바마는 일리노이(대의원수 185명)를 비롯해 조지아(103명), 앨라배마(60명), 미네소타(88명), 콜로라도(71명), 코네티컷(60명), 델라웨어(23명), 유타(29명), 캔자스(41명), 노스 다코타(21명), 아이다호(23명), 알래스카(18명), 미주리주(88명) 등 13개주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반면 힐러리는 `정치적 고향’인 뉴욕(281명)을 비롯해 캘리포니아(441명), 뉴저지(127명), 매사추세츠(121명), 아칸소(47명), 오클라호마(47명), 테네시(85명), 애리조나(67명), 뉴멕시코(38명) 등 9개 주에서 오바마를 제압했다.
이미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슈퍼화요일의 승리로 대세를 장악하고, 사실상 대선후보를 확정지은 상태였으나 오바마와 힐러리의 `전투’는 계속 됐다.
오바마는 슈퍼화요일 이후 치러진 루이지애나, 네브래스카, 워싱턴, 메인, 워싱턴D.C, 메릴랜드, 버지니아 위스콘신 등지의 예비선거에서 파죽의 11연승을 거두며 경선승리를 향해 질주했다. 이들 지역의 승리는 사실상 오바마 쪽으로 경선승리의 향배가 기우는 결정적 변수가 됐다.
위기에 몰린 힐러리는 그러나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승리,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다이하드’ 힐러리는 한달 보름이상 쉬었다가 4월22일 재개된 펜실베이니아 예비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다시 한번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2주 후 오바마는 흑인표 결집에 힘입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승하고, 힐러리의 낙승이 예상되던 인디애나에서 대추격전 끝에 석패함으로써 사실상 경선승부를 결정지었다.
이 때부터 미국의 언론들은 사실상 오바마를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오바마도 자신에게 첫 승리를 안겨준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연설을 갖고 대선승리가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1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힐러리에게 패했지만, 3일 사우스다코타와 몬태나를 끝으로 5개월간에 걸친 경선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경선에서는 오바마와 힐러리의 말실수가 잦은 편이었고, 그들의 둘러싼 주변 인사들의 잡음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 오바마는 자신의 스승격인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갓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 발언으로 수세에 몰리자 과감히 그와의 결별을 선언했고, 급기야 1일에는 20년간 다닌 교회의 교적탈퇴를 선언하는 등 숱한 곡절을 겪어야 했다.
힐러리는 지난 1996년 영부인 시절에 보스니아 방문 당시 비행장에서 저격수들의 총탄을 피해 차량에 올라야 했다고 말했으나, 당시 TV화면 공개를 통해 거짓말이 들통나 해명에 애를 먹어야 했다.
특히 힐러리는 승산이 없으면서도 경선완주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답하면서 로버트 케네디가 6월에 암살당했던 일을 상기시키는 바람에 마치 오바마의 신변에 비슷한 일이 생기길 원하는 게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선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오바마가 TV 광고비로 7천500만달러, 힐러리가 4천600만달러를 사용했다는 집계가 나올 정도로 `공중전’에 쏟아부은 돈이 천문학적이었며, 상대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거광고가 많았던 점도 옥에 티로 꼽힌다.
그러나 경선과정을 통해 오바마와 힐러리에 대한 검증이 비교적 철저하게 이뤄졌고, 민주당 당원이 크게 늘어난 것은 공화당 매케인 후보와 겨루게 될 대선본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ks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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