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 오는 11월4일 미 본선을 앞두고 양당 대선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으로 압축되고 있다.
미국인들은 사상 최초의 흑백대결이자 이념과 정책 면에서 진보와 보수로, 연령과 경륜에서도 40대 중반의 신예 정치인과 고희를 넘긴 70대 역전 노장 정치인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후보를 놓고 역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백인 주류사회를 대변하는 베트남 전쟁영웅 출신의 매케인을 선택해 보수정권의 연장을 계속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흑인해방 등 인종차별 철폐를 통해 그동안 표방해온 백인들만의 나라가 아닌 지구상에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다인종 이민국가로 거듭 날 것인가라는 선택을 유권자들이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매케인과 오바마의 출생과 가족사,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이제까지 인생과 정치적 행로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이번 선택은 미국의 역사에 그리고 세계 역사에 주는 상징성과 의미를 이미 부여받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두 후보가 너무나도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매케인과 오바마는 출생 자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매케인은 해군 4성 장군을 2대에 걸쳐 배출한 군인 집안의 후예답게 1936년 8월29일 아버지가 주둔하던 파나마 미 해군기지에서 태어났다. 그가 전쟁영웅으로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이유로 이라크 전쟁을 찬성하는 보수 우파 정치인을 길을 걷게 된 것도 이런 출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바마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주(州)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바마 역시 이런 흑백 결합을 통해 백인이 주류인 미국사회에서 비주류인 흑백혼혈인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변화와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를 부여받게 됐다.
매케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아들도 해사를 졸업했고 현재 이라크에서 복무중이다. 매케인은 항공모함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다 1967년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 그해 10월 23번째 출격에 나섰다가 추락해 중상을 입고 붙잡혀 5년 반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석방됐다.
그는 그 때 혹독한 고문과 구타로 팔을 크게 다쳤다. 지금도 팔을 높이 치켜들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 해군 제독의 아들이라는 신분이 밝혀져 베트콩과 미군의 포로석방의 대상이 됐을 때 나보다 먼저 포로로 잡힌 동료가 석방되기 전에 나만 풀려날 수 없다고 석방을 거부, 전쟁영웅이 됐다. 매케인은 22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1981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가 두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이후 어린 시절 가운데 4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하와이에 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오바마의 이런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그의 정신적인 성장의 토양이 됐다.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인 인도네시아의 유년기를 보내 이슬람교에 대한 관용에 눈뜨게 됐다. 오바마는 이런 다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좀처럼 하기 힘든 경험을 통해 문화의 충돌로 불리는 세계의 문제를 통합의 가치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온 셈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하버드 법대 시절에는 법대 학회지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버드 로 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이 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90년대 초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시카고 대학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매케인과 오바마의 정치적 경륜에서도 뿐만 아니라 외교정책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매케인은 83년 애리조나 주 하원의원을 거쳐 87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내리 4선을 기록한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진 정치인이다. 오바마는 96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인 발을 디디게 됐다. 오바마는 연방상원의원으로는 초선이며 2004년11월 당선됐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 등 `불량국가’의 지도자들을 조건 없이 만나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매케인은 그가 외교적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맡길 수 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을 펴고 있지만 매케인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 매케인과 오바마 중 한 명의 선택은 미 외교와 국제외교의 방식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매케인식의 미국 보수 우파의 기존 외교방식이 미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국제관계가 상당기간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배경에서 통합의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오바마가 당선돼 대통합을 앞세워 북한 김정일 등과 직접 대화에 나선다면 엄청난 변화가 올 수 밖에 없다.
결혼도 매케인은 재혼, 오바마는 초혼이다. 부인의 성장배경도 두 사람만큼이나 다르다.
매케인은 18세 연하인 교사 출신 신디 헨슬리(53)와 재혼했는데 신디는 애리조나 주의 맥주 판매상의 딸로 엄청난 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재산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는 부인 미셸(44)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으며 미셸은 흑인 소방관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에서 나와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와 함께 매케인과 오바마는 개인 성격과 지지자들에 대한 접근 방식도 판이하다.
매케인은 흰머리와 둥근 이마 덕분에 온화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그와 한판 붙지 않았다는 상원의원이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다혈질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도 추락 직전에 다시 살아남아 대선 후보를 거머쥔 것은 베트남 포로석방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원칙론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이라크 주둔 미군 증강과 관련, 여론의 지지가 급락했을 때조차 이를 지지했고 미군 증강효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소신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오바마는 도시빈민운동가 출신답게 밑바닥을 파고들어 조직 운동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이런 능력은 운동원들이 앞에 나서서 여론몰이와 대중설득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했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제치고 선두로 나설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그는 힐러리로부터는 행동은 없고 말만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는 무엇보다 대규모 청중들을 사로잡는 대중연설의 귀재이며 그의 집회는 록페스티벌을 연상케 할 정도로 항상 뜨거운 열기를 불러 일으켜왔다. 그는 그리고 이런 집회에서 수천 명 또는 만 명 가까운 유권자들을 끌어 모아 상대 후보를 압박해왔다.
약간 어눌한 듯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매케인, 말 한마디로 대규모 청중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오바마가 앞으로 대선 유세에서 어떻게 대비될 지, 그리고 TV토론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도 큰 관심거리다.
jae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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