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으로 바뀐 곡물 경작지. 6년째 가뭄이 계속되면서 많은 호주의 농부들은 벼농사를 포기, 대신 물이 적게 드는 포도원만 늘고 있다.
가뭄으로 바싹 마른 목초지에서 먼지만 일으키고 있는 양떼들. 호주의 목양업자들은 이 양떼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상기후 ‘호주 대가뭄’을 통해 본 원인분석
물 많이 드는 벼농사 포기… 느는 건 포도원
린제이 렌윅은 호주 남부지역에 있는 먼지투성이의 도시 데니리퀸의 시장이다. 그는 이 지역의 거대한 정미공장이 성업 중인 때를 기억하고 있다. “윙윙 도는 제분기 소리는 이 지역의 심장박동 소리였다.” 그의 말이다. 그 기계가 이제는 작동을 멈추었다.
데니리퀸 정미공장은 지구의 남반부에서 가장 큰 정미공장으로 한 때에는 전 세계 2,000만명이 필요로 하는 곡식을 처리했었다. 그러나 이상기후가 불러온 지난 6년 동안의 심한 가뭄은 호주의 쌀 수확을 98%나 감소시키면서 이 정미공장도 마침내 문을 닫게 한 것이다.
이 호주의 쌀농사 붕괴는 전 세계적인 쌀 파동을 불러온 여러 요인 중의 하나다. 지난 3개월간 국제시장의 쌀 가격이 배 이상 폭등하면서 쌀 수출국들은 수출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홍콩, 필리핀 등지에서 쌀 사재기를 불러오고 카메룬,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이티,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아이보리코스트, 우즈베키스탄, 예멘 등 세계 곳곳에서 시위와 폭동사태를 야기 시켰다.
가뭄은 호주에서 쌀 뿐이 아니라 전 농경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가뭄으로 목초지가 타버렸다. 양을 방목하는 목양업자들이 난리다. 물이 많이 소요되는 작물도 기피대상이다. 그 결과 호주의 농업은 구조적 변화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는 곳은 호주의 농업의 하트랜드로 불리는 남부지역이다.
많은 농부들이 쌀 경작을 포기했다. 대신 밀을 심었다. 쌀에 비해 물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호주 남부지역에서 특히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포도원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농부들은 아예 농지나 농업용수 사용권을 팔아치우고 있다.
농지나 물 사용권을 포기하지 않은 호주의 쌀 경작 농부들은 보다 적은 양의 물로 농사를 효과적으로 짓는 여러 가지 테크닉을 실험하고 있다. 그렇지만 호주의 전체 쌀 경작지는 3분의 1정도 줄었다. 그리고 지난해 쌀 수확은 예년에 비해 극히 낮았다. 정부가 공급하는 농업용수가 8분의 1로 주는 등 물 부족이 주원인이다.
이 상황에서 득을 보고 있는 건 포도재배 농부들이다. 쌀값은 최근 두배로 올라 호주산 1급 쌀의 경우 톤당 1,000달러를 호가한다. 이 같이 높은 가격에 쌀이 팔려도 포도재배에서 얻는 이익에 못 미친다. 포도재배는 에이커 당 보통 2,000달러의 이익을 내는 반면 쌀 재배는 240달러의 이익을 낸다는 것이다.
물 사용권을 팔아치우는 농부들은 쌀 재배 농부들뿐이 아니다. 목양업자들도 물 사용권을 팔고 있다. 37만5천 에이커의 목초지에서 양을 키우는 피터 밀킨스의 경우를 보자. 이 넓은 목장에 물을 대기 위해 9마일에 이르는 노천 관개수로 시설을 갖추었다. 가뭄으로 이 관개수로는 무용지물이 됐다. 공급 수량의 90%가 증발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 수로를 밀킨스는 파이프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목양업자들은 조금이라도 비가 내려, 싱싱한 풀과 물이 있는 목초지로 양떼를 옮기는 작업을 서로 협력해 하고 있다. 그 수송 작업이 그런데 보통 일이 아니다. 트럭을 동원해 수십, 수백 마일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떼로부터 조금이라도 눈을 돌릴 수 없다. 까딱하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전업 양몰이인 프랭크 폭스의 말이다.
가뭄으로 쌀은 더 귀해지고 있다. 호주 최대의 미곡상 선라이스는 농부들이 쌀 재배를 사실상 포기한 것을 보고 지구의 남반부에서 최대로 일컬어지는 동사소유의 데니리퀸 정미공장의 가동을 5개월 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호주 국내는 물론이고 파푸아 뉴기니, 대만, 중동, 남태평양의 나라들 등 기존의 해외 공급처를 계속 확보하기 위해 선라이스는 외국에서 쌀을 대대적으로 구입했다. 이 회사의 이 같은 물량확보를 위한 사재기는 기존 쌀 수입국의 쌀 수입 감소를 가져와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선진국 호주의 농부들은 가뭄을 맞아 벼농사에서 포도재배로 전환하는 등 어찌됐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 피해는 쌀 수입국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돌아가 그들만 죽어 날 판이다. 쌀이 이들의 주식이지 포도주가 주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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