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벽화 논쟁의 기폭제가 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 동굴을 발견한 사우투올라는 이것이 구석기 시대 작품이라고 주장했다가 학계에서 매장된 후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2만년동안 일관되게 높은 수준·스타일 유지
처음에는 발견자의 위조품으로 여겨져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스페인과 프랑스 일대에 걸쳐 그려진 동굴 벽화가 아닐까. 무엇 때문에 고대인들이 수만 년에 걸쳐 무릎으로 기어야 들어갈 수 있는 동굴 한 복판에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동굴 벽화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1879년 스페인 북부 산탄데르 인근 자기 소유 땅을 8세 난 딸과 산책하고 있던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는 뜻하지 않게 그 때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동굴 입구를 발견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동료 고고학자와 함께 이 굴 내부를 탐험한 끝에 웅장한 동굴 벽화를 찾아냈다. 그는 그 다음해인 1880년 이것이 구석기 시대인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임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비웃음만 샀다.
당시 고고학계의 권위자였던 가브리엘 드 모티예와 에밀 카르타이약은 그의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 그를 사실상 매장시켰다. 이들 벽화는 그가 위조한 그림이란 의혹까지 받았다. 사우투올라는 획기적인 유적 발견자라는 찬사 대신 사기꾼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괴로워하다 8년 뒤 사망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이처럼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던 것은 그림 솜씨가 수만 년 전 사람이 그렸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을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북부 스페인과 남부 프랑스에서 잇달아 수천 점의 동굴 벽화가 발견되자 학계의 전문가들도 더 이상 이를 부인할 수 없었다. 사우투올라 비판에 가장 열을 올리던 카르타이약은 그 사후 14년 뒤인 1902년 ‘회의론자의 고백’이란 글을 통해 자기 주장이 잘못이었음을 공개 사과했다.
알타미라 동굴은 관광객의 출입으로 벽화가 훼손되자 당국은 1977년 일반인의 출입을 금했고 1982년 다시 열었으나 극히 일부에게만 개방, 한 번 구경하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 대신 2001년 일반인을 위한 복제 동굴 전시관이 개관했다.
동굴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가장 오래된 쇼베 벽화가 3만2,000년 전, 가장 최근인 라스코 벽화 1만8,000년 전 등으로 지금부터 4만에서 2만년 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그림의 예술적 우수성과 진품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으나 이들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설이 없다.
동굴 벽화의 주제가 압도적으로 짐승인 것으로 봐 동물 사냥을 도와달라는 주술적인 목적에서 그렸다는 설, 그림이 그려진 장소가 동굴 내부에서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라는 점에 착안, 통과 제의의 수단이었다는 설 등등이 분분하다.
그러나 동물 중에서 당시 사람들의 주식이었던 순록 등은 드물고 오히려 말과 황소 등 먹이가 아닌 것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주술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벽화 앞에 여러 연령층의 발자국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특정 연령층만의 독점물이 아니었으리란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굴 벽화의 스타일이 거의 변하지 않았고 작품의 수준도 높게 유지돼 왔다는 사실이다. 동굴 화가들은 동굴 벽의 질이나 돌출을 이용할 줄 알고 원근법에도 능숙할 정도로 고도의 기법을 갖추고 있었으며 사물을 보는 눈이 현대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지 350만년, 현대인의 직계 조상이 출현한지는 10만년 전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동굴 벽화 이전 이들이 남긴 유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4만년을 기점으로 인류는 동물 뼈를 이용해 옷을 만들었으며 도구의 종류와 질이 다양하고 정교해졌고 악기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까지 동물 수준에 머물고 있던 의식이 현대인 수준으로 비약한 것이다.
25세 때 이 동굴 벽화를 직접 본 파블로 피카소는 “우리는 지난 1만2,000년 동안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여러 벽화 중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웅장한 동물들의 군무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며 이 때문에 이 벽화는 ‘구석기 시대의 시스틴 채플’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인류가 동물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왔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동굴 벽화인 셈이다.
또 2만년에 달하는 장구한 세월 동안 벽화의 질과 수준이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은 이 기간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였음을 시사한다. 이 시대를 살던 사람의 유골을 조사해 보면 그 후 시대인들보다 오히려 건강했으며 수명도 50을 넘긴 사람이 적지 않았다. 먹이는 풍부하고 사회 조직은 안정돼 있으며 사람들은 대체로 이에 만족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시절도 2만 년 기후 변화로 주식이던 순록이 사라지면서 끝나고 동굴 벽화 시대는 급격한 쇠락을 맞게 된다. 이런 작품을 남긴 사람들의 후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이들 벽화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 어둠 속에서 혼란한 세상에 예술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려 노력한 우리 동시대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최초의 고전파 화가들
일반인을 위한 동굴 벽화 해설서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책이 있다. 그레고리 커티스가 쓴 ‘동굴 화가들’(The Cave Painters)이라는 책이다.
‘세계 최초의 화가에 관한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어떻게 이들 벽화가 발견되게 됐는가부터 출발, 그 진위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 이들을 치밀하게 손으로 복사한 책을 발간해 일반에 널리 알리는데 공을 세운 앙리 브뢰일 이야기, 동굴 벽화의 목적에 대한 논란, 어째서 이것이 중요한 인류의 문화유산인가에 관한 설명 등 동굴 벽화의 모든 면이 간결하고 흥미롭게 서술돼 있다.
저자는 사물을 사실적이고도 균형 있게 묘사한 동굴 화가야말로 첫 번째 고전파 화가라며 우리가 이들에 쉽게 반응하는 것도 그리스 예술품에 익숙한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이들이 같은 화풍을 오래 유지한 점을 들어 이들은 현재에 만족한 보수주의자들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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