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교사 시절 ‘고구마’추억
연말이 가까워오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해를 마무리하여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을까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궁리합니다. 캠퍼스도 연말이나 연초, 혹은 졸업 시즌이면 학생들이 선물을 사 오기도 합니다.
보통 스승의 날이 오면 학생들이 여기가 미국인데도 불구하고 매년 카드와 꽃을 사와서 저의 코를 찡하게 합니다. “선생을 울리는 놈들은 나쁜 놈들이야…”
이 세상에서 선물을 받고 고맙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저는 선물을 받으면 그냥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현재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서는 ‘절대로’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학점을 주는 사람과 학점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6년 동안 선생을 하면서 받았던 가장 감동 깊은 선물은 1971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충청도의 공주사범대학을 다니면서 공주직업소년학교에서 국어, 도덕, 음악, 미술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비를 낼 수가 없어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야간에 중학교 1학년과 2학년 수준까지 가르쳐서 졸업을 시키는 공주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등은 아무도 없고 오직 네 명의 공주사범대학의 학생이 교사였습니다.
그 때 학생들 중에 미숙이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 자취집에서 어디를 나갔다가 들어오니 제 방 앉은뱅이 책상 위에 무엇인가 누런 신문지 종이에 싸여져 놓여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펴 보았더니 온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찐 고구마 두 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선생님, 우리 집에서 오늘 고구마를 삶았는데요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놓고 갑니다. 소풍을 데리고 가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꼬옥 물 마시면서 드세요”하고 연필 글씨로 써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미숙이네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미숙이는 자기 몫으로 받은 고구마를 제게 들고 왔던 것입니다. 같이 있었더라면 한 개씩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터인데…
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그 고구마를 다시 들고 제게 있던 식은 호빵을 같이 싸서 미숙이네가 사는 옥룡동 산꼭대기로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숙이가 우물가에서 바가지로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번에 알았습니다. 저녁끼니인 고구마는 제게 갖다 주고 배가 고프니까 물을 마시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목이 메여 왔지만 저는 항상 활짝 웃는 것을 ‘적선’으로 여기며 자랐던 이유로해서 크게 웃으면서 “미숙아!”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숙’자를 발음하기도 전에 저는 그만 울면서 미숙이를 안았습니다. “어머 선생님... 어떻게...?” 제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면서 미숙이도 그만 자기도 모르게 저를 따라 우는 것이었습니다. 둘이서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뒤 같이 손을 맞잡고 움막같은 미숙이네의 방으로 들어가 같이 고구마와 호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반은 웃고 반은 콧물을 마시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 사이 미숙이 할머니가 생 고구마를 봉투에 담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그 생고구마를 받기로 혼자 큰 맘으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 생고구마 대신에 내가 미숙이네에 무언가를 갖다 드리면 될 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 미숙이를 돌보았고 미숙이는 그 다음해인 1972년 2월에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육십 명 학생에 학부형은 단 다섯 분뿐이었던 기쁘면서도 슬픈 졸업식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제가 받았던 가장 따뜻하고 감동스러웠던 고구마와 같은 선생이 되고 싶어 하면서 연말에 보낼 선물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정 정선
<시인, UC Santa Barbara 한국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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