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 친구에 고민하는 아들을 위한 약속
자포자기 한 친구를 돕고 싶어요.
졸업을 서너 달 앞둔 어느 날, 12학년에 재학중인 잭의 어머니가 긴밀하게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면담을 요청하였다. 잭의 아버지와 사별한 후 외아들 잭을 기르고 있는 싱글 맘인 이 어머니는 단정한 외모와 조용한 말씨의 백인 여성이다.
사건의 발단은 1주일 전 잭이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고 인근 맥도널드에 나간 것으로 시작된다. 그날 잭을 불러낸 학생은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잭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한 친구였다.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지만, 부모의 불화 때문에 사립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고,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했던 잭과는 자연히 접촉하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기대에 들떠서, 맥도널드로 달려간 잭을 맞이한 친구는 옆에 자그마한 짐 가방을 가리키면서, 곧장 너의 집에 가서 며칠만 묵어야 되겠다고 하더란다.
저녁에 퇴근한 어머니는 갑자기 손님 한 명을 치다꺼리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잭의 어머니는 교양 있고 마음씨 착한 여자였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친구의 까칠한 얼굴과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고 몹시 안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봄 휴가 동안 집에 왔다가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무작정 가출을 하고, 오갈 데가 없어서, 생각난 것이 잭의 집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차마 당장 집으로 가라고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한 주일 동안 두 명의 틴에이저들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도 하고, 침실도 정리하고, 보통 때의 두 배가 되는 집안일을 불평 없이 했다.
친구의 어머니와 통화가 되어서 곧 아들을 데려갈 줄 알았는데, 전화할 때마다 “내일 갈게요”를 반복하면서 일주일이 다 되도록 친구의 어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잭은 친구에게 침대를 내주고, 좋은 옷을 주고, 제 용돈까지 나누어 주고, 심지어 잠옷까지 주더라는 것이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를 우리 학교로 전학시키고 싶다고 의논을 해 왔다. 아무래도 친구가 자기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몇 달만 참으면 졸업을 할 텐데, 이제 학교를 옮기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남의 사정을 그렇게 이해 못 하느냐고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나를 찾아와서 의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의외의 방향으로 사건이 터졌다. 잭의 어머니가 침실에서 마약에 사용하는 기구를 발견한 것이었다.
친구의 마약 사용을 아들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또는 알고도 엄마인 자기에게 숨기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잭의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로 친구를 자기 집에 데려다 주기로 잭의 동의를 받아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사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해결’이 되었다. 잭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친구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굿바이.”
편지를 읽은 잭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얘는 마음씨도 아주 착하고 머리도 썩 좋은 애에요. 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졌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요. 친구의 잘못은 아니지 않아요. 누군가 얘를 보살펴 주고 손을 잡고 이끌어 주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내일부터라도 친구를 찾아보기로 약속을 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불쌍한 친구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아들을 위로하는 길이라는 것을 잭의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착한 모자의 얘기였다.
김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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