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은 단연 세계 1위다.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배의 40%가 한국산이며 현대 중공업을 비롯 세계 4대 조선소가 모두 한국 기업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 원화가 초강세를 보인 것도 이들 기업이 벌어들이는 외화가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조선업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불과 40년이 안 된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2차 경제 개발 계획의 하나로 조선을 4대 국책 사업으로 지정하고 정주영 현대 회장에게 강제로 떠맡겼다. 처음 자금난과 기술 인력 부족을 이유로 고사하던 정 회장도 “도망가지 마시오! 절대 해야 돼!”라는 박 대통령의 호통을 듣고서야 겨우 승낙했다.
그 후 정 회장이 런던으로 날아가 한국의 조선소 건설 능력에 회의적이던 외국 투자가들에게 원화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400년 전에 이런 배를 만든 민족입니다”라고 설득, 돈을 끌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해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에 지금 세계 돈을 긁어 모으는 한국 최초의 현대 조선소가 세워졌다.
조선소가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 발전에 정주영만큼 천재적 능력을 보인 인물도 드물다. 그러나 정치판에 뛰어든 그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다 철저한 실패를 맛보고 만다. 주변 아첨꾼들의 잘못된 정보에 근거,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확신한 그는 김영삼 대통령 후보를 “돌대가리”라고 부르며 조롱하다 막상 선거에 참패하고 나서는 “나 같은 인물이 당선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며 무릎을 꿇었다. 재계의 귀재도 권력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법과 대학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리걸 마인드’를 갖추라는 것이다. ‘법조인으로서 사고 방식’이란 뜻으로 무엇보다 논리적인 이론 전개가 바탕이다. 이를 위해 재판 당사자 양쪽 입장에서 변론을 준비하기도 한다. 어느 쪽 입장에 서도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주장을 펴기 위한 훈련이다.
이회창 씨는 동기 중에서 가장 훌륭한 ‘리걸 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학교 공부에서도, 고시 합격한 후 선배들의 평가에서도 항상 선두를 달려왔고 승진도 제일 빨랐다. 그런 그도 일단 권력의 환상에 빠지면 논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예상대로 7일 그는 올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출마 이유로 든 것은 좌파 정권 종식과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나서면 우파 표가 갈라져 좌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자기가 만든 한나라당 경선 때는 쥐 죽은 듯 있다가 지금 당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정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일이다. 거기다 은근히 박근혜에게 경선 불복을 종용하고 나중에 사태가 여의치 않으며 후보 단일화를 할 수도 있다는 교활함까지 내비쳤다.
10년 전 이인제에게 당했던 한을 자기가 제2의 이인제가 되어 갚고 싶기라도 한 것인가. 정말 정주영 말대로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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