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시작에서부터 어색했다. 두 정상이 만날 때는 의전이 매우 중요하고 분위기가 공동 성명서보다 더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로 보았는데 감격스러운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어째 이상하네” 하는 생각이 먼저 스친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너는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쇼킹에 가까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려 김정일 위원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왜 그렇게 한참 걸어가는지) 김 위원장은 꼼짝 않고 약간 비스듬한 자세로 기다리다가 그를 맞이하며 악수했다. 보기에 정말 거북했다. 더구나 김정일 위원장의 얼굴이 너무 무표정하고 악수도 무뚝뚝해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알현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당신의 일방적인 시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 어색한 순간을 묘사한 연합통신의 글을 여기 소개한다.
“평양 4.25 문회화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예상 외로 노쇠하고 무표정해 눈길을 끌었다. 평소 흔히 입던 연한 갈색의 점퍼차림에 안경을 낀 김정일 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무개차에서 내려 다소 서두르듯 자신의 앞으로 걸어왔지만 노란 줄을 그은 위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기다렸다. 상대방이 서둘러 걸어오면 예의 차원에서라도 몇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법도 했지만 김 위원장은 두 다리를 양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두 팔은 그대로 내린 채 오른쪽으로 비스듬한 자세로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뜨겁게 포옹했던 것과 달리 노 대통령 내외와 포옹을 하지 않은 채 악수만 했다. 악수마저도 김 전 대통령과는 두 손을 맞잡고 열정적으로 한 것과 달리 노 대통령과는 미소를 띤 채 한 손으로 서너 번 흔드는 등 의례적인 수준에 그쳤다.”
김정일 위원장이 행사장에 나온 것을 보기 드문 파격적 의전인 것처럼 남한측 TV가 언급했지만 어색한 이 날의 분위기를 커버하지 못했고 그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PR 자세가 안타까웠다. 현장에서 TV 기자가 “영빈관 백화원 숙소에 갈 때 김 위원장이 노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갈 예정입니다.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갈지…” 했는데 김정일은 차에 타지 않았다.
이번 평양회담은 북한이 ‘김정일 장군 위대하게 보이기’ 캠페인을 펼치는 것에 노무현 대통령이 들러리 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풍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만료 전에 자신의 무엇을 남기려는 업적 의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북한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노 대통령이 북측의 아리랑 공연을 보았으면 김정일이 무엇을 강조하는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아리랑’ 공연 카드섹션에는 ‘선군’이라는 글자가 여러 번 나오는데 마지막에 ‘선군만세’로 막이 내려진다. 김일성은 ‘주체사상’,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다.
‘선군정치’란 군인과 국방이 가장 우선인 체제이고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는 원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핵개발이 선군정치의 상징이다. 6.15 남북선언 후에도 핵을 실험하고 선군정치를 이념으로 삼는 지도자와 공동 평화 선언이라… 평화는 모양새부터 평화다워야 평화다. 김정일 크게 보이기에 조연 역할 하는 것은 한국 대통령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숙제다.
이 철 / 고 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