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는 시애라 산행은 즐겁다기보다는 고달픈 나그네 길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끝없이 걸어야 하고 곰과 부딪치는 무서움을 늘 지니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셀퍼가 짐을 져주는 히말라야 산행처럼 깔끔한 운동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건 막 노동이지 운동이 아니다.
네바다를 거쳐 캘리포니아의 비숍을 지나 휘트니 산의 입구인 론 파인을 목표로 길을 떠났다. 네바다의 황량한 사막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야생 조롱말떼가 지나가는가 하면 양떼들도 보이고 검은 소떼도 지나간다.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일라이 비행장은 해마다 여름한철 세계각지에서 글라이더 조종사들이 모여들어 온 마을이 축제분위기이다. 그중에 섞인 한 사람이 바로 시카고 출신 굴지의 경제인이자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 기록을 세운 스티브 포셋이었다.
스티브는 글라이더 조종 세계기록을 세우려는 야심으로 몇 년 전부터 개인교습을 받아왔는데 이번 여름에는 88시간 비행 기록을 세우고 돌아갔다고 비행장 관계자가 얘기해주었다.
다시 사막을 가로지르는 네 시간의 질주 끝에 조그만 광산 마을 토노파에 도착했다.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지만 옛날 광산업이 성했을 때의 화려한 호텔건물들이 문을 닫은 채 그대로 서있고 길거리에 세워둔 녹슨 광산기계들이 인상적이었다.
밤 12시경 론 파인에 도착, 차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이튿날 아침 일찍 입산허가증을 받아 휘트니 포터 파킹까지 가서 거기서 2박3일의 산행 짐을 진채 산길은 떠났다.
이번이 세 번째 길이어서 마음속에 자신이 있었지만 단독산행은 처음인 만큼 무리가 있었다. 모든 음식을 검은 통속에 넣어 곰의 접근을 막아야하는데 이 무게가 상당했고 단독산행이어서 물과 음식을 전부 지고 오른 것이 예상외로 큰 부담이었다. 얼마 못가서 양쪽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두 손이 퉁퉁 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미국의 높다는 산은 거의 다 올라봤지만 정말 고된 산길이었다. 이틀의 산행으로 1만4,000피트 가까운 능선에 올랐을 때는 어깨가 거의 마비된듯한 느낌이었고 왼쪽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이 통증이 스며왔다.
거기서 다시 2마일쯤 되는 산길을 걸어야 정상의 오두막 가설건물에 도착한다. 겁이 났다. 바람과 더불어 차가운 온도가 혼자 가는 산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도 올라야한다. 유타에 두고 온 산 친구들과 건축과의 다정한 학생들 얼굴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
드디어 정상에 발을 딛고는 약 5분간 앉아 있다가 하산 길을 재촉했다. 어둡기 전에 텐트에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고 산을 내려가면 오를 때의 피로감이 풀리기 때문이었다. 달렸다. 어두운 밤중에 곰을 만나는 것보다는 달리는 것이 나을 것이란 판단에서 뛰고 또 뛰었다.
돌아오는 길에 일라이 비행장에 들러 190마력의 세스나 192기를 날았다. 이륙이 퍽이나 가벼웠다. 네바다의 높은 산을 왼편에 두고 오른편의 넓은 평지 위를 나르는 즐거움은 아픈 왼쪽다리도 잊게 한다. 네바다의 하늘은 너무도 푸르다.
아 - 하늘아 푸른 하늘아.
정석화 / 조종사·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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