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진이’ 타이틀롤로 두 번째 영화 선봬
송혜교의 황진이는 당당했다. 신분에 억눌려야만 했던 시대, 양반에서 천민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스스로 세상을 조롱하고, 허위에 찬 지성의 껍데기를 통쾌하게 벗겨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한 남자만을 평생 가슴에 뒀던 한 여인으로 만날 수 있다.
영화 ‘황진이’(감독 장윤현, 제작 씨네2000ㆍ씨즈엔터테인먼트)가 6일 세상과 만난다. 제작비 100억 원,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감독,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스태프들의 면면과 함께 영화 ‘황진이’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건 누구보다도 황진이 역을 맡은 송혜교다.
하지원의 TV 드라마 ‘황진이’가 먼저 소개된 까닭에 어느 자리에서든 비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는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후에는 오히려 그 질문이 잦아든 느낌을 받았을 터. 영화를 보면 확실히 드라마와의 차별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꼭 만나고 싶었던 인물입니다만 너무 빨리 기회가 온 게 아닌가, 두 번째 영화인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주저했죠. 그런데, 음, 제가 올해 스물일곱 살이더라구요. 이 기회를 놓치면 못 만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하겠다’고 했습니다.
황진이 자체가 주는 부담감.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영화를 보면 잦은 클로즈업이 눈에 띈다. 화면 가득 송혜교의 얼굴만 잡힌다. 심지어 사또와의 베드신에서조차. 얼굴 표정만으로 황진이의 감정을 담았어야 했으니 그 또한 부담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서야 저도 클로즈업이 많이 쓰였다는 걸 알았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여러 커트로 찍으니까 어떤 게 쓰일지 모르죠. 부담요? 그건 없었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 황진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시나리오를 끼고 살았습니다. 6개월 동안 감독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황진이가 된 것 같아요. 그 덕에 순간순간 몰입하고 집중해 찍을 수 있었죠.
’순풍 산부인과’부터 ‘풀하우스’까지. 그가 보여준 이미지는 청순하고 맑으면서도 귀여웠다. 그런 그가 성숙한 여인의 내음을 품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그는 최소한 이 부분만큼은 말끔히 씻어냈다. 한 남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여자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으니.
전 사실 잘 모르겠는데, 촬영 중에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눈빛이 달라졌다. 황진이 때문인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뭔가 있긴 있나봐요. 성숙해 보인다는 칭찬이 듣기 좋습니다.
영화는 황진이의 굴곡 어린 인생을 차분히 담아낸다. 별당아씨의 당당함도 있고, 어느 한 순간 종의 자식이라는 게 밝혀져 천민이 됐을 때의 분노도 있다. 그리고 ‘놈이’를 향한 사랑이 크게 자리한다.
황진이가 만약 기생이라고 이 남자, 저 남자 헤프게 안겼다면 과연 우리가 그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까요? 비록 기생의 몸이지만 한 남자를 향한 진실한 사랑을 가슴에 품었던 여자였기에 그토록 세상에 당당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황진이는 참 행복한 여자예요. 평생 간직할 사랑이 있었으니라며 부러운 듯 말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려진 황진이. 도대체 황진이는 누구였을까. 송혜교는 황진이를 어떻게 생각하며 그려냈을까.
황진이도 우리랑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때 그 시절 태어났을 뿐이죠. 평범한 여자였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황진이의 매력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황진이를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 본인 스스로 그렇게 알려지고 싶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황진이를 품고 싶었던 사람들, 황진이에게 냉소를 당했던 사람들이 ‘황진이는 이러저러한 여자다’라고 말했겠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술술 흘러나왔다. 그걸 보면서도 그가 오랫동안 황진이가 돼 살았다는 게 느껴졌다.
사실 황진이를 본 사람은 누구도 없잖아요. 황진이는 작가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죠. 그리고 배우에 따라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황진이가 된 거겠죠.
’황진이’를 향한 한국 영화계의 기대를 그도 알고 있다. 너무나 잘.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한국 영화계가 위기이고, ‘황진이’가 기를 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영화 ‘파랑주의보’가 흥행에 실패했을 때 그땐 물론 괴로웠지만 그걸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어요. 열심히 잘 만들어도 흥행에는 배급 등 외적인 요인이 많더군요. 그래서 두 번째 영화인 ‘황진이’를 반드시 흥행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요즘에는 부담감이 참 많이 드네요. 많은 분들이 ‘황진이’가 잘돼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영화 ‘황진이’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면모와 당찬 연기력을 선보인 송혜교는 연기의 맛을 쬐끔 맛보기 시작해서인지 점점 더 연기에 욕심이 난다고 했다. 쉼 없이 작품을 골라 연기하고 싶다는 것.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영화나 드라마나 상관없습니다. 드라마도 할 거예요. 다만 ‘영화배우 송혜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도록 영화에서 성과를 얻고 싶네요. 당분간만.
부드럽게 웃는 표정이지만 언제나 욕심을 숨기지 않았던 송혜교가 갈수록 더 분명하고 반드시 이루고 싶은 욕심을 내고 있어 안도가 됐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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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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