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지하실에서 잠자리를 해결하고, 밤마다 델리 가게의 쓰레기통을 뒤져 배고픔을 달랬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두렵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어의 장벽과 재정적 절박함, 향수 등의 갖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고학에 성공한 한 한인 유학생의 삶이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 1월 뉴욕 시립대 대학원을 ‘매그나 쿰 라우데’라 불리는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현재 뉴저지 저지시티의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트 제너랄은행에서 감사부서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구백칙(50)씨.
구씨의 파란만장한 유학생활은 지난 78년 뉴욕으로 도미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구씨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로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며 성장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 온 구씨는 지난 81년 헌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학비를 낼 수 없어 85년 학업을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식당 종업원을 비롯해 안 해 본 일이 없었고, 신분 문제로 인해 임금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돈도 없고 학벌도 없는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와 83년 현재의 아내 낸시를 버스 안에서 처음 만나서 데이트를 하다가 2년 후 결혼했다.결혼 후에도 밤낮으로 일해 돈을 모았다. 마침내 그는 2004년 헌터칼리지에 재입학할 수 있었고 동시에 시립대 대학원 학사 과정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85년부터 재입학한 2004년까지의 19년간을 회상하며 구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놀랍다. 밤낮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 다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고 말했다.그는 아직 한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올리비아라는 이름의 딸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언젠가 한국에 방문하면 인사동과 고궁을 방문하고, 족보를 찾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구씨는 졸업을 앞둔 한인 젊은이에게 “모든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며 “매사에 도전 정신을 발휘해 한국인으로서의 우수성을 나타내라”고 한인 젊은이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한편, 구씨는 의식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절박한 유학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학업을 계속해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회계학과 그리스, 라틴 고전을 각각 평점 4.0, 3.9의 우수한 성적으로 복수 전공해 졸업한 것으로 지난 15일자 뉴욕선지에도 소개된 바 있다.<정> A1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