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1974~75년 한국 정부의 제안을 받고 제주도에 주한미 공군기지 건립을 검토한 사실이 최근 미 국무부 비밀해제 외교문서들에서 드러났다.또 미국은 당시 제주도 공군 기지 개발 타당성 여부를 조사한 뒤 “우리는 (미 공군)부대 주둔을 위한 제주도 이용 필요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한국이 기존 비행과 항구시설을 자체적 국가적 이유로 향상 또는 확장 할 경우 제주도는 우발적 상태에서 장래에 이용도가 있
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한국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제주도가 지난 14일 국방부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수용키로 결정해 주민들의 찬반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이미 30여년전에 제주도에 군사기지 건립을 추진한 사실이 확인돼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작성 이후 30년이 지난 비밀문서를 자동검토 해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내용들을 비밀해제 시키는 미국의 ‘정보자유공개법’에 따라 뉴욕한국일보가 입수한 1975년 1월~12월 미 국무부 외교문서는 당시 주한미대사관이 워싱턴 D.C. 본부와 주고받은 ‘비밀(Secret)’ 전보들로 이중
에는 한국 정부의 제주도 개발 노력과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반응을 기록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공군참모총장 존스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의 1975년 1월8일 청와대 만남을 워싱턴 D.C.에 보고한 주한미대사관 전보는 “박(대통령)은 일본 좌파세력들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들을 신뢰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미국이 제주도에 공군기지를 건립하고 주일공군기지를 제주도로 이전하라는 한국정부의 제안을 끈질기고 다소 강력하게 부활시켰다”고 밝히고 있다.전보는 또 “박은 한국정부가 자체적으로 제주도에 항공 시설을 건설해 미 공군이 주둔,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할 의사도 비추고 그 연장선으로 미 공군이 즉시 ‘기술적 조사(Technical Survey)’에 착수할 것도 촉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보는 박 대통령의 제안에 “존스는 조사 요청을 참고하겠다. 그러나 미국의 건설 자금에 대한 전망은 없고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 같은 시설을 건설하는데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 갈 것임을 강조한 뒤 만일 미 공군의 해외 주둔 지원이 필요하게 될 경우 미국은 기존의 한국 공군기지에의 주둔 검토를 선호한다고 답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외교문서들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은 박 대통령과 존스 장군과의 회담에 앞서 이미 한국 국방부장관이 미국 국방부장관에게 제주도 공군기지 개발을 제안했고 또 1974년 한미안보협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안건으로 제기돼 그 타당성 검토에 착수한 바 있으며 미태평양사령부는 1974년 10월4일, 주한미군사령부는 10월14일, 미태평양육군사령부는 10월30일, 미태평양공군사령부와 미태평양군함사령부는 11월1일 각각 부정적 결과를 국무부에 보고함에 따라 “제주도 개발에 그 어떠한 미국 자금을 지출 하는 것에 대한 뒷받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미군의 월남 철수에 이어 주한미군감축 및 철수 가능성 등 미국의 한국 방어 의지에 의혹이 높아져 있는 한국정부측에 공식 통보를 유보한 상태였다.
주한미대사관은 그러나 존스 장군과 박 대통령의 회담 이후 한국 정부로부터 꾸준히 제주도 공군기지 개발 제안에 대한 진척 현황을 문의 받자 1975년 2월3일 워싱턴에 관련 미군사령부들의 제주도 미 공군기지 건립 검토 결과 내용을 상기시킨 뒤 “우리는 이제 한국정부에 ‘이 문제에 대한 군사적 검토 결과 우리는 부대 주둔을 위한 제주도 이용 필요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이에 추가로 ‘만일 한국이 기존 비행과 항구시설을 자체적 국가적 이유로 향상 또는 확장 할 경우 제주도는 우발적 상태에서 장래에 이용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전했으며 국무부는 2월4일자 전보로 주한미대사관이 한국정부를 접촉,
미국의 입장을 공식 전달토록 승인했다.
이어 주한미대사관은 같은 해 3월8일자 전보에서 “유엔군사령관이 1975년 2월28일자로 국방부장관에게 첨부(1975년 2월3일자 서울-워싱턴 전보) 내용 선의 편지를 보냈다”고 워싱턴에 보고해 한국의 미군 제주도 공군기지 개발 노력은 무산됐다.
한편 주한미대사관은 미국이 한국정부에 제주도 미 공군기지 이전에 대한 공식 입장을 전달 한 뒤 한국정부가 1975년 5월 사이공 함락에 따라 받아들인 베트남 난민들 중 한국에 연고가 없는 363명을 미국이 제3국으로 이동시킬 것을 요청하자 답변에 앞서 ‘한국정부가 문제의 베트남 난민들을 미국이 제주도에서 공수하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며 또 다시 미국의 제주도 공군기지 건립문제를 제기하고 나올 것을 각별히 우려한 내용도 국무부 외교문서에 기록돼 있다.
■ 미군기지 무산 되자 ‘국제관광단지’로 개발
75년 6월 워싱턴에 ‘개발 프로젝트’ 전보
한국정부는 1974~75년 미국의 제주도 공군기지 건립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7,000만 달러 예산을 들여 제주도를 ‘국제관광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주한미대사관이 1975년 6월2일 워싱턴 D.C. 본부에 보낸 ‘제주도에 대규모 관광개발 프로젝트’ 제목의 전보는 “한국정부가 스포츠와 휴양시설과 8개 관망대, 3,090객실 호텔, 400객실
유스호스텔, 2개 골프코스, 90개 빌라, 보트와 요트 놀이용 호수 2개, 케이블카들과 자동차 운송 페리 등 건설을 계획한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보는 이어 “프로젝트 총 예상 비용은 현재 7,000만달러이며 외국환비용 4,000만달러는 장비수입과 자재, 외국 컨설턴트 서비스 비용으로 사용될 계획으로 한국정부는 아직 이 프로젝트의 외국환비용 융자를 확보하지는 않았으나 ‘국제재건개발은행(IBRD)’에 4,000만달러 대출을 신청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전보는 “참고로 한국정부가 1973년에 43만2,000달러 지원대출금과 국내자금 1만8,800달러의 예산을 들여 보잉사에게 한국의 관광전망 조사를 의뢰한 바 있으며 보잉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관광 사업은 오는 10년간 연 20% 성장할 것과 경주, 제주도, 설악산과 한려해상공원이 1급수준 국제휴양지역 개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상기시키고 한국정부의 “제주도 개발에 대한 타당성 연구는 1975년 9월에 시작, 1976년 중순에 완성될 전망”이라고 프로젝트 내역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미국이 불과 3개월전인 1975년 2월말 제주도 공군기지 건립 제안을 공식 거절한 것을 볼 때 제주도 공군기지 건립 제안은 주한미군이 조만간 철수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대중 일본 납치사건과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등으로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 처해져 있던 점과 베트남 전쟁 패배 후 아시아태평양군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던 미국이 일본주둔공군기지를 제주도로 이전시켜 국방을 강화하려던 의도 이외에도 미국의 돈으로 비행 시설 건설을 비롯, 장기적 차원에서 제주도를 국제 여행 지역으로 개발하려했던 2중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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