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공부벌레들의 청교도 정신
힘들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 걸어
지난 주에는 아이들을 보러 보스턴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보스턴이 개인적으로 그리 낯선은 곳이 아닌 것은 매서추세츠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적도 있었고 또 형이 Worcester에서 산 적도 있어서 몇 번이고 그 때 짜장면을 먹으러 보스턴에 들렀던 기억도 나고, 근자에는 우리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큰 매형네를 찾아가 그 집을 기점으로 동부에 있는 대학을 여러 곳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보스턴을 다녀갔었으며 또 2년전 딸이 이곳으로 학교를 정하고 온 해에도 다녀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야 새삼스럽게 정말로 보스턴을 보고 온 것 같은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근처에 있는 플리머스(Plymouth)라는 항구까지 보고 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지껏 몇 번이고 다녀갈 때마다 다른 볼일로 그곳을 볼 엄두도 못 냈었지만 이번에는 같이 모시고 간 장모님이 이 곳까지 온 이상 그 곳만은 꼭 보고가야 한다고 강하게 권해주셨기 때문에 귀한 하루를 할애해서 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 대해서는 본인도 추수감사절 때마다 설교도 했었던지라 큰 기대 없이 갔었는데 막상 그 곳에 가보고는 “오기를 너무나 잘했구나 차라리 케네디 생가와 기념관은 생략을 하고라도 이곳에서 좀더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었다.
놀라웠던 것은 오늘날 보스턴 지역은 큰 도시로 발전해 있고 특히 인근지역에 큰 대학만 28개가 있는 세계에서 인정해주는 교육의 도시로 발전해 있지만 불과 300여년 전의 그 출발점은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험악하고 열악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안내문에 기록된 바로는 필그림들이 이 지역에 처음 온 이민자들도 아니고 또 동기도 완전히 종교적으로 순수한 것만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 자신은 가난하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를 원했고 따라서 영국 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삶의 터를 마련하려 했지만 거기서도 삶이 결코 쉽지는 않았고 그래서 대륙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한 벤처기업가의 모집에 신천지로 갈 수 있다는 그 한 희망으로 100여명이 넘게 응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산사나무꽃’(Mayflower)이라는 배를 타고 그 험한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해오는 큰 모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타고 온 배가 거기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는데 우선 그 지역은 기후가 얼마나 험한지 겨울이 되기 전에 그 배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월동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처음 상륙했다고 전해지는 ‘플리머스 바위’(Plymouth Rock)도 그 자리가 너무 험해서 관광객들의 편의를 고려해서 보다 안쪽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아야 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배 자체도 얼마나 왜소한지 100명이 넘는 승객이 화물을 가득 싣고 그 험한 바다를 건너 올 수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고 한다. 청교도들이 가지고 온 씨도 가축도 풍토가 너무나 달라서 재배에 실패한 것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또 한편 거기에 묻어온 병균과 종자가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과 생태들에게 감당 못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 후에는 그 지역 어느 부락은 원주민들이 아주 전멸했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한 해에 청교도들의 숫자가 100여명에서 40명 미만으로 준 것은 물론 그 원주민들까지도 그들이 가지고 온 전염병에 의해 대거 쓰러져 갔다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으며 오늘의 부귀를 이루어 놓을 수가 있었을까? 그 원동력은 자타가 공인하듯이 그들이 가진 청교도 신앙이었다고 한다. 그 신앙이 일행의 반이 넘는 숫자가 죽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역경이 닥칠 수록 그들은 더욱 더 신앙을 의지했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짓고 신앙위주의 깨끗한 삶을 살아 나갔던 것이다. “깨끗한 삶은 유익을 증대한다”(Purity breeds profit.)라고 한 역사가는 말했지만 이런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들은 나머지 신대륙을 능히 이겨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기에 충분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리가 잡히자 미 대륙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을 지었는데 학과는 신학이 위주였고 백인 위주가 아니라 원주민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 하버드에 간 아들이 기거하고 있는 기숙사의 벽에는 원주민으로서는 처음으로 학위를 얻은 졸업생을 기념하는 팻말이 크게 걸려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보고 오면서 우리 부부는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부부가 나눈 말은 “여보 차라리 오지 말았을 걸 그랬지?”였다.
그 이유는 우리 부모 눈에는 애들이 당하는 고생이 수백년 전 청교도들이 당하던 역경보다 조금도 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도 지난 2년간 늘 웹에서 보아 왔지만 막상 비와 구름과 뼈를 파고드는 듯한 찬바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고 학생들 하나 하나가 한 명도 만만해 보이는 학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경쟁심들이 강한지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아들 방에 들렀을 때 한 여학생이 한쪽 구석에서 휴대용 컴퓨터를 가지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꼬박 밤을 샌 듯, 도무지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의심조차도 가지 않을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그나마 위로로 삼는 것은 이것이 부모의 강요가 아니라 자기들이 다 본 후에 스스로 택한 길이요, 우리는 오히려 말린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쓰러운 마음은 여전해서 매일 새벽 아이들을 기억 안 할 수가 없고 신앙으로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간절히 비는 것이 부모된 우리의 솔직한 고백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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