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여자 아나운서의 소식이 연예 기사란을 채우고 있다.
한 아나운서의 신데렐라같은 결혼 얘기가 한동안 주요 연예기사로 등장하더니, 아나운서들이 수백만원짜리 옷을 걸치고 잡지 화보를 찍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다른 아나운서는 외국에서 진행되는 미인 선발대회에 출전해 논란의 핵심이 됐다.
이같이 방송인이라기보다 연예인화 되고 있는 여성 아나운서 문제의 원인을 방송사 및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점에서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21세기여성포럼’의 주최로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희망터에서 진행된 ‘공영방송 KBS와 여성방송인의 유리천정’이란 제목의 이번 포럼에서는 KBS 여성협회장을 맡고 있는 임수민 아나운서, 한국어팀장 지영서 아나운서, 정용실 아나운서, 성기영 아나운서 등 KBS 아나운서를 비롯, 여성계 인사들이 참석해 의사를 개진했다.
’21세기여성포럼’은 각자 전문 분야의 여성들의 모여 여성들의 힘을 규합하고 주류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모임으로 지난 98년 창립됐다.
◇ 남 아나운서, 정년퇴직이 다수…반면 여 아나운서, 결혼 프리랜서 전환 등 이유로 퇴직
토론자들은 대체로 여성 아나운서의 문제가 일부 ‘튀는’ 아나운서들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여성계가 직면한 젠더 편향 문제로 확대해 근본 원인을 짚었다. 여성에 대한 시장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접근과, 남성 위주의 조직 운영이 여성 아나운서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발제자로 나선 이수연 한국여성개발원 평등정책 연구실 연구위원은 우선 방송사 성별 인력구조를 통해 여성 인력의 방송사 내 한계를 꼬집었다.
이 위원이 발제한 자료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입사한 KBS 본사 아나운서의 누적수는 남자 21명 여자 34명으로 여자가 훨씬 많다. 그러나 이 가운데 남자는 전원이 재직하고 있는 반면 여자는 4명이 퇴직했다.
같은 기간 퇴직한 남녀 각 21명의 퇴직자 가운데 남자 아나운서의 주요 퇴직 사유는 정년퇴직(15명)인데 반해,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 프리랜서 전환(6명), 결혼(4명) 등의 이유가 많았다.
이 위원은 이어 방송사의 외모 위주 아나운서 선발 방식과 초기 과다 노출이 여성 아나운서의 직업 안정성과 전문성 관리에 문제점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40대 이후에 주름진 얼굴의 여성이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우리의 방송 풍토에서 외모는 결국 여성 아나운서의 ‘족쇄’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이 위원은 우리나라 여성 아나운서의 경우 5년이나 10년 사이, 즉 40대 중반 이전에 앵커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을 들었다. 반면 다른 나라의 경우 에바 헤르만(독일. 40세), 다크마 에르크호프(독일. 63세) 등의 여성 방송인이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승진에 도움이 될만한 업무에서의 배제, 출산과 육아 유직 등의 이유 때문에 승진과 보직에 있어서 남자 아나운서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도 여성 아나운서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했다.
◇ 여 아나운서 중 30대 후반 정용실 오유경 아나운서가 KBS 텔레비전 최고령 등장인물
이 자리에 참석한 KBS 아나운서들은 당사자가 직접 느끼는 KBS 조직 내의 문제점들을 짚어내는 한편, 이에 따른 대안을 제시했다.
KBS 여성협회장을 맡고 있는 임수민 KBS 아나운서는 아나운서 중에서 이제 30대 후반인 정용실 오유경 아나운서가 KBS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최고령 인물이라며 상업주의가 훨씬 강하다는 미국도 우리 같지는 않다고 우리의 방송계 현실을 비판했다.
임 아나운서는 이어 여성 아나운서의 경우 입사 후 5년까지 방송기회가 가장 많이 주어진다며 여성 진행자의 경우 ‘신선함’이 경력에 우선하는 능력이 되는 진풍경이 방송 개편 때까지 펼쳐진다고도 전했다.
이 같이 제작진의 요구를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현 방송 시스템 때문에 여성 아나운서가 조직에서 주도권을 갖고 경력 관리나 전문화를 도모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임 아나운서는 또 ▲방송국 내 인력의 재교육 기회 부족▲여성 진행자를 보는 기준이 젊음과 외모 위주인 사회풍토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을 키워주지 않으려는 조직 문화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특히 아나운서 선발 과정에서 외모에 대한 높은 기준과 고액 사설 아나운서 아카데미의 성행은 실력과 재능을 갖춘 지망생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현재 KBS에서는 아나운서의 새로운 채용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어팀장인 지영서 아나운서는 대표성을 가지지 않은 여론에 좌지우지돼 여성 진행자를 결정하는 프로그램 제작진이나, 빛나는 프로그램에만 출연하고자 하는 일부 후배 아나운서들의 자세도 문제라며 KBS 아나운서 개개인과 KBS 내부 조직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 아나운서 채용 시험 변화 등 선결과제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들은 이같은 문제점들의 해결책으로 ▲여성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 ▲아나운서 채용 시험 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 감소 ▲여성 아나운서의 전문화를 위한 방송국의 정책적 노력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제도적 지원 ▲여성 방송인들의 연대 등을 꼽았다.
박옥희 21세기 여성포럼 공동 대표는 시청료 거부 운동과 연계해 시청자 위원회 등에서의 여성 할당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구체적인 활동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용실 KBS 아나운서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의 소비 욕망은 대중은 끊임없이 새로운 강수정 노현정을 찾으려하고 있어 그들이 사라지면 또 다른 아나운서가 그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정통 아나운서가 존재가 아나운서 연예인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사제휴]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오미정 기자 om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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