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재억 <목사 / 굿스푼 대표>
1523년 데알바라도가 이끄는 160명의 기사와 300명의 병사들은 과테말라, 온두라스에 펼쳐졌던 마야(Maya) 문명의 한복판 끼체족(Quiche)의 우따뜰란에서 왕족들을 유인하여 불태웠다. 인디오들은 낙인을 찍어 노예로 팔아 버렸다.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 역사 중 가장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마야 인디오 제국 말살 정책은 이렇게 펼쳐졌다. 스페인이 중남미 신대륙을 정복할 당시 선주민의 전체 인구가 약 9천만 명을 선회했는데, 정복 후 150년이 지나면서 350만 명으로 급속히 감소했다.
선주민 마야 인디오들에 대한 스페인 정복자들의 잔혹행위는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선주민이 50%를 차지하고 있는 과테말라는 아직도 10%도 되지 않는 백인이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다. 개혁을 허용하지 않으며 강압적 수단으 로 지배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런 내적 모순이 원인이 되어 1996년까지 40년간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 데알바라도의 망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과테말라엔, 그로 인해 20만 명의 선주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4만5,000명이 실종되었으며, 440개의 인디오 마을이 파괴되었다.
과테말라 마야 끼체 족 인디오 출신인 리고베르따 멘추 뚬(Rigoberta Menchu Tum)은 가난한 인디오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성장한다. 멘추는 20살이 되기까지 스페니쉬를 배우지 못했다. 손바닥만한 농지에서 식구들을 위해 옥수수와 콩, 커피 등을 재배하는 일부터 먼저 배워야 했다.
1978년 7월부터 82년까지 과테말라를 통치하던 육군대장 출신의 로메오 루카스 가르시아 장군의 독재시절. 인디오 소녀의 파란만장한 삶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이 반정부 투쟁의 이유로 고통 당하며 무참하게 죽어갔던 슬픔,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멘추의 오빠는 16세 때 과테말라 보안군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고 화형 당했다. 그의 어머니는 1980년 군인들에게 끌려가 심한 고문과 함께 윤간까지 당하고, 처형되어 밀림에 유기되었다. 같은 해, 멘추의 아버지 비센떼 멘추는 과테말라 시티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서 농민연합위원회를 이끌고 반정부 투쟁을 벌이다 난입한 군인에 의해 37명 전원이 불에 타 죽었다.
부모 형제를 일찍 여읜 슬픔, 사랑하던 이웃이 갑자기 행방불명되어 혼란스럽던 참담한 세월을 탓하지 않고 소외된 자들의 인권을 위해 과감히 헌신한 리고 베르따 멘추 툼. 중남미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치열한 삶, 반권력, 인디오의 사회적 복권과 인종. 문화간의 화합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장마비가 시원스럽게 내리던 독립기념일 연휴에 과테말라 출신 라티노 도시빈민들은 더 외롭다. 하릴없이 애난데일 길가에 까맣게 나와 있지만 데려가는 사람도,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죽일 수는 없는 일.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한가닥 노동 기회를 찾아 길에 앉았지만 종일 허탕만 친다.
월요일 거리급식은 양고기로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뜨거운 버터에 감자를 굴려 반찬을 만들어 푸짐히 점심상을 차려 낸다. 시름에 젖어 찾아온 낯선 나그네들은 묵묵히 밥숟갈을 옮길 뿐 웃고 떠드는 이도 없다. 정복자들로부터 짓밟히고, 착취 받고 빼앗긴 아픈 기억만 있지, 사랑 받았던 기억이 없기에, 대가없이 나눠지는 사랑이 어색하다. 그것도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한인들의 사랑을 받는다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사랑이 어색하여 어쩔 줄 모르는 저들이 더 정겹다.
김재억 <목사 / 굿스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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