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날짜를 일부러 그렇게 잡았는지 하필이면 독립기념일에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에서는 국가 최고 잔칫날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미사일 발사로 가장 직접적 충격을 받은 것은 일본. 미사일들이 모두 동해로 떨어지면서 일본인들은 “혹시라도 미사일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해 미주한인들은 대체로 ‘심란하다’는 반응이다. “저러다 뭔가 삐끗해서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나면 어쩌나”제일 불안하고, “북한의 막가파 식 행동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면 미국 사는 우리의 처지는 어떻게 되나”심란하다는 반응들이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7월5일(현지시간)은 시기적으로 묘하다. 이번 미사일 실험이 충격적이라고 해도 60년 전 이때의 충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대량 살상무기의 원조라고 할수 있는 원자폭탄 공개 실험이 인류 사상 처음으로 행해진 것이 60년 전 이때이다. 아울러 인류 패션계에 핵 충격적 사건이 터진 것이 바로 60년 전 이 날이다.
1946년 7월5일 파리의 한 수영복 발표장.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가 파격적인 수영복을 내놓았다. 이름은 ‘비키니’. 그 며칠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핵폭탄 실험의 무대가 태평양 마셜 군도의 비키니 섬이란 데서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손바닥만한 천 조각 두 개를 내놓고 수영복이라고 부르는 레아르의 아이디어는 핵실험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 전에도 투피스 수영복이 선보이기는 했지만 허리부분이 언뜻 보일 정도 일뿐 노출은 거의 없었다.
레아르의 ‘비키니’와 이전의 투피스 수영복의 차이는 사이즈. 몸을 가리는 천의 사이즈가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이 충격의 핵심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비키니를 입겠다는 모델이 없어서 스트립 댄서를 고용해 겨우 선보였을 정도였다.
비키니가 대중화 한 것은 60년대. 브리지트 바르도, 제인 맨스필드 같은 배우들이 50년대 영화에 입고 등장하면서 거의 20년이 걸려 일반 여성들의 용기를 끌어냈다. 이제는 천 조각이 아니라 끈이라 해도 크게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비키니는 일반화했다.
하지만 60년이 지나도 편안해지지 않는 또 하나의 ‘비키니’가 있다. 바로 비키니 섬 주민들이다. 미국이 핵실험 당시 비키니 섬에 살던 주민은 167명. 미국 측은 “인류의 선과 세계 모든 전쟁의 종식을 위해” 실험을 해야겠으니 잠시만 다른 섬에 가있으라는 말로 이들을 소개시켰다.
그리고 60년이 지나도록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고향이 핵 폭탄으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작고한 코미디언 밥 호프는 생전에 이런 말로 비키니에 관심을 보였다 - “2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한번도 전쟁이 없던 낙원을 골라 지옥으로 날려버렸다”
가공할 살상무기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인류를 곤경에 빠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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