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사는 데일 카이헐리(64)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유리 예술가(Glass Artist)이다. 유리 예술은 순수예술과 상업이 혼합한 형태이다. 그의 예술품을 좋아하는 고객으로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명사들이 수두룩하다. 마음 편히 예술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 카이헐리에게 괴로운 일이 생겼다. 송사에 휘말린 것이다. 연방법원에서 그의 유리 예술의 독창성에 대한 시비가 붙었다. 카이헐리는 유리제조사 두 곳을 고소했다. 한 곳은 그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곳이다. 카이헐리는 이들 회사가 바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디자인 등 자신의 독창적인 여러 디자인을 무단 복제했다고 주장했다. 카이헐리는 “바다는 넓게 펼쳐져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창의성을 갖고 예술에 접근하길 바란다. 내 디자인을 복제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소송을 제기한 것은 바로 이러한 비도덕적인 복제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란다. 이에 대해 유리제품 제조사들은 카이헐리가 유리 예술품의 모든 형태, 모양, 색상까지 독점하려 든다며 “그의 예술세계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진화한 기술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라고 맞받았다.
세계최고 유리 예술가 데일 카이헐리 저작권 도용 소송
바다 등 자연에서 영감 얻어 유리 바구니·병·접시 디자인
벨라지오호텔 천장, 예루살렘 다윗박물관에 조형물 장식
빌 클린턴, 콜린 파월, 빌 게이츠 등 유명 고객 수두룩
“독창성은 보호돼야 한다” vs “자연을 독점할 수는 없다”
카이헐리의 계약업자로서 14년간 일한 브라이언 루비노는 “카이헐리가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이 일절 바다와 관련한 유리 예술품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피고 측은 카이헐리가 오랫동안 예술에서 손은 뗐으며 그가 유리 제품을 구입한 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카이헐리는 이러한 주장은 완강히 부인했다. 이번 소송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유명 유리 예술가의 영향력이 어느 선까지 미칠 수 있는지 가늠하게 될 중요한 시험대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카이헐리는 27년간 유리 예술품을 손수 만들지 않았다. 그는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그리고 3년 뒤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다 다쳐 어깨를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헐리는 고객의 권유로 스케치와 같은 기본적인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잡지 ‘글래스’의 편집장 앤드류 페이지는 “카이헐리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송사에 휘말리는 모습은 그 이미지에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리한 색감과 구성에 대한 창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카이헐리가 이 분야에 끼친 공적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송사는 그의 ‘최악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타코마의 도살장 직원 아들로 태어난 카이헐리는 직원 93명이 일하는 카이헐리사(Chihuly Inc.) 주인이다. 그는 레이크 유니언의 보트하우스에서 일한다. 나무를 잘라 만든 테이블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여기에 200명이 앉을 수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유명인사들도 시애틀을 방문할 때 이 보트하우스를 빼놓지 않는다. 보트하우스 바닥은 투명하게 돼 있고 그 밑에는 온갖 유리 예술품이 보관돼 있다.
보트하우스에서 페인트가 묻은 신발을 신은 칠헐리는 “이번 송사는 결코 돈 때문이 아니다. 나의 디자인을 복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많은 종류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옳지 못한 일을 바로 잡기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2003년 저작권 소송이 샌프란시스코 연방항소법원에서 열렸었다. 당시 원고는 피고가 자신의 해파리 유리 제품을 도용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누구도 자연에 대해 저작권을 독점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카이헐리에게 불리한 판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판결문은 동시에 “아무리 자연예술이라고 해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카이헐리의 패소를 예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카이헐리의 작품은 균형을 깬 꽃병, 접시, 바구니 모양의 유리제품이 많다. 파격의 미를 십분 살린 것이다. 바다와 꽃 모양도 아주 이색적이다. 독창성이 물씬 풍긴다. 그의 작품은 필름에 담기기도 하고 DVD로 제작돼 판매되기도 했다.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카지노 호텔 로비의 4만 파운드짜리 천정에도 카이헐리의 작품세계가 스며 있고 예루살렘의 다윗 박물관 타워에도 48피트 높이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캐린 클로츠 저작권전문 변호사는 “누구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도 카이헐리의 작품세계는 피카소의 작품과 같이 너무 특이하고 독창적이다. 이는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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