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에 설치된 교통 감시 카메라. 이들은 방범과 테러 예방에도 활용되고 있다.
교통·방범목적 등 핑계 곳곳에
전 국민의 파파라치화
찍혔다하면 삽시간 전국에 쫘악
미국인들은 끊임없는 카메라 공세 속에 생활하고 있다.
아차 실수로 과속을 하거나 정지신호를 놓칠 경우 교차로에 설치된 교통감시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진다.
우범지역을 중심으로 거리 곳곳을 두리번대는 범죄 감시 카메라는 어둠의 장막을 꿰뚫는 투시력을 지니고 있다. 늦은 밤, 인적 드문 길가에 방뇨라도 하다간 눈 밝은 범죄카메라에 잡혀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미국에서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시위장에는 어김없이 ‘경찰 찍새’(photograph police)가 등장한다. 군중 사이에 숨어 폭력을 휘두르거나 선동하는 참가자들의 신원파악과 현장증거 확보를 위해 방증 사진을 찍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물론 경찰도 끊임없이 카메라에 잡힌다. 경찰국은 순찰차 차체에 카메라를 설치해 경관들의 업무수행 과정을 꼼꼼하게 살핀다. 카메라가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제아무리 밉살스런 용의자라 해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 게다가 로드니 킹 사건 이후 경찰이 모여있는 장소는 행인들의 디카와 셀폰카에 이중삼중으로 포위되어 있다고 보아 무방하다.
감시 카메라는 일상생활의 공간 깊숙이 파고 들어온 지 이미 오래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면 출입구 안쪽 천장에 달린 카메라가 제일 먼저 고객을 맞이하고 ATM 환전기 앞에서면 폐쇄회로 TV 카메라가 이용자를 지켜본다.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들도 거의 대부분 카메라로 무장되어 있다.
카메라는 지상에 설치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대기권 밖의 궤도를 도는 감시 위성에는 지상을 오가는 차량의 번호판까지 또렷하게 잡아내는 초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게다가 카메라 기능을 지닌 셀폰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이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향상되는 반면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컴퓨터와 합작, 타인의 은밀한 사적 공간을 훔쳐보며 즐기는 ‘관음증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멘로 팍 소재 미래연구소의 폴 사포는 “최근 부쩍 늘어난 인터넷 사진공유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훼손하는 사진들이 무수하게 떠있다”며 “이들을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국인 모두가 파파라치로 전락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로 찍히고 찍는 분위기 속에서 카메라는 공격과 방어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최근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여성 승객을 향해 자신의 남성을 노출한 ‘바바리 맨’이 그녀의 셀폰에 찍혀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셀폰으로 찍은 사진이 인터넷을 타는 바람에 곧바로 신원이 드러나면서 개인은 물론 ‘가문의 수치’를 불러온 것. 요즘처럼 카메라 기능을 갖춘 셀폰의 보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바바리 맨’과 같은 파렴치한들이 ‘작업’을 벌일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치한들의 손에 들린 소형 카메라는 ‘흉기’로 둔갑,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사정없이 파괴하고 짓밟는다.
이처럼 ‘카메라 전성시대’는 개개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카메라의 시선에 잡힐지 모르는 ‘프라이버시 위기시대’이기도 하다.
<이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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