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젠가 블랙이글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막상 제안이 왔을 때는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라 절망적이었다.
5일 수원 공군비행장에서 발생한 블랙이글 소속 A-37기 추락사고로 숨진 고(故)김도현(33.공사44기.소령진급 예정) 대위가 생전 블랙이글을 취재한 한 작가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이어 5∼6개월간 비행도 못했지만 블랙이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블랙이글팀은 나를 기다려줬고 그 간의 정신적 방랑을 끝내고 인생의전화위복을 맞게 됐다고 했다.
이날 사고가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정황상 김 대위의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공군 의장대의 사전 축하공연에 이어 오전 11시30분께 시작된 곡예비행.
어린이를 동반한 1천300여명의 가족들은 굉음과 함께 힘차게 땅을 박차오른 비행기 6대의 힘찬 비상에 탄성을 터뜨렸다.
비행기들은 20여분간 하얀 연무를 늘어뜨리며 마치 그림을 그리 듯 종횡무진 하늘을 누볐다.
이어 2대의 비행기가 고도 400m의 저공비행으로 마주보며 날아왔다. 관객들은 부딪칠 듯 날아 온 비행기가 동체를 좌우로 90도 꺾어 동체 하부를 스치듯 지나가는묘기를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곧 이어 다시 나타난 두 비행기는 다시 관람객 좌우에서 진입, 360도 회전한 뒤수직 상승하는 `나이프에지’(knife edge)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속력을 붙였다.
바로 그때 오른쪽에서 날아 온 비행기는 아슬아슬 스쳐 지난 뒤 다시 상승하는가 싶더니 곧장 활주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수 초에 불과했지만 김 대위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한 듯 비행기는 좌우로 심하게 요동 쳤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신용호(13.서울 수송중)군은 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비행기가 추락했고, 곧바로 시커먼 연기가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공군 자체 소방차량과 구급차가 추락장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고 공군은 모든 행사를 중단하고 관람객들을 대피시켜 행사는 1시간여만에 끝났다.
블랙이글의 에어쇼를 보기 위해 1천300여명의 시민들이 불과 1.8㎞ 떨어진 곳에 운집해 있었고 당시 사고항공기의 속도와 좌우로 뒤트는 곡예비행을 감안하면 항공기가 어디로 추락할 지는 전혀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해 봐야겠지만 비록 저고도이기는 했지만 김 대위가 위기의 순간에도 탈출 버튼을 누르지 않고 조종간을 끝까지 잡고 있었던 점으로 미뤄 흔들리는 기체 속에서도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공군 관계자는 기체에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곡예비행을 하고 있던 터라 비상탈출을 했을 경우 기체가 관람석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추락을 포함한 통제불능 상태에서는 즉각 탈출하는 것이 공군 조종사들의 기본원칙이란 점을 감안하면 김 대위가 사고 직전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했을가능성이 높다.
동료들에 따르면 작년 2월 블랙이글에 배속된 김 대위는 `비행은 항상 겸손하게’라는 신조로 전투 조종사의 길을 걸어 왔다.
임관 당시 종합성적 4위로 합참의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 대위는 생도시절에도 가입교 예비생도 훈련대대장, 전대장생도, 동기생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이 탁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은 3,4세의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김 대위의 4번째 그의 결혼기념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5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마라톤광인 그는 블랙이글에서 힘찬 기동을 선보일 수있도록 훈련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동료들은 전했다.
김 대위는 이날 1계급이 추서됐고 영결식은 8일 오후 3시 8전투비행단에서 부대장으로 거행되며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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