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스테판슨 박사는 그의 조상을 1,100년 전까지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이런 소릴 하면 이상하다고 들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말을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반도 절반 크기의 아이슬랜드에서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스테판슨 박사의 고향인 작은 섬나라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신기하거나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보도는 계속된다. 아이슬랜드는 유전자 이슈에 있어서 비정상적이다.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순수혈통이 거의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서기 9세기 일부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과 켈트족이 정착한 이래 새로운 이민자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측면에서 아이슬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성을 유지한 나라다.
9세기 스칸디나비아, 켈트 족 정착 이후 외부 이민자 없어
혼혈 거의 없어 유전자 동질성 보전, ‘게놈 지도’ 작성 적합
뇌졸중에서 당뇨, 편집증 등 촉발 유전자 10여 종 발견
심장마비 관련 유전자 ‘LTA4H’ 발견, 신약 개발 박차
유전자 토대로 특정 그룹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 우려도
1990년 말 과학자들이 게놈(Genome: 생물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유전자 군을 함유하는 염색체의 한 세트) 지도를 작성할 때 스테판슨 박사는 아이슬랜드야말로 게놈 지도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슬랜드는 이렇게 해서 게놈 지도 작성의 모델 연구센터가 됐다.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학자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유전자 측면에서 거의 순수한 아이슬랜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면 무언가 확실한 질병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찼다.
갖은 노력 끝에 결실을 맺었다. 스테판슨 박사가 그의 고향인 수도 레이캬비크에 공동 창업한 ‘deCODE Genetics’는 지난 10년 간 뇌졸중에서부터 편집증에 이르는 질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전자 10여종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치명적인 타입2 당뇨를 촉진하는 유전자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심장질환과 관련한 유전자를 토대로 해 만든 약을 조만간 임상 실험할 계획이다. 학자들은 ‘deCODE Genetics’의 학술적 개가를 칭찬하고 인류의 삶에 미칠 긍정적 측면에 대해 들떠 있다.
이 회사의 유전자 확인 작업은 간단명료하다.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확인한다. 그리고 질병을 앓는 환자를 확인한다. 유전자가 건강한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한다. 유전자가 질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적인 상황에서 질병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곳에서는 환경적 요인이 너무 복잡해 분석이 어렵다. 그러나 아이슬랜드는 예외다. 그래서 연구하기가 쉽다.
스테판슨 박사는 아이슬랜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에 필요한 주민들의 혈액채취 등을 무난히 마쳤다. 그리고 이들의 의료기록도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닷컴붕괴로 이 회사의 주가가 65달러에서 2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현재는 9달러 정도다. 돈이 고갈되면서 연구원들을 대거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도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회사 ‘Hoffman-La Roche’이 1998년 2억달러를 지원하면서 deCODE Genetics가 개발한 약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회사는 받아들였지만 이번엔 주민들이 개인정보가 외국 기업에 유출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결국 이 프로젝트와 관련돼 개발되는 모든 약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 무마됐다. 그리고 스테판슨 박사는 주민들과 개별접촉을 통해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회사는 10만명의 혈액을 보관하고 있다. 아이슬랜드 성인의 절반에 해당한다. 연구원들은 이 자료를 토대로 심장마비를 막아줄 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심장마비에 관련된 유전자는 ‘LTA4H’다. 아이슬랜드 주민 가운데 이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의 경우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평균보다 40%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유전자를 미국의 흑인들에게 적용해 조사를 했더니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평균치보다 250%나 높았다.
deCODE Genetics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삼아 치료약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시판까지는 수년이 걸리고 예견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선 학계나 일반인들에게 놀랄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유전자를 확인함으로써 특정한 그룹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행위가 빈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회사에서 이들을 가입시키지 않을 수도 있고 취업 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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