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엄씨·전의 이씨 등 종친회 결성 바람
“족보, 항렬 짚다보면 가족처럼 서로 돕게돼
자녀엔 자연스레 정체성 심어주고 역사교육”
일부선 “또 끼리끼리 모이나” 회의적 시각도
7일 한인타운의 한 일식당.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LA에서는 낯선 조선시대 대제학, 왕건의 개국 공신 이탁 등을 화제로 삼아 유대감을 쌓고 있었다. 이처럼 낯선 화제가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그들이 한 뿌리인 이탁의 후손들인 ‘전의 이씨’이기 때문이다.
“핏줄이 땡겨요”를 외치는 이들이 LA에서 늘어나고 있다. 족보도, 종친 개념도 없는 미국에서 이들은 뿌리를 찾기 위해, 가족이란 따스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하나, 둘 모이고 있다. 특히 씨족이 3만명 남짓으로 추산되는 ‘전의 이씨’ 같은 본관들이 강한 결속력을 무기로 종친회 결성에 적극적이다.
최근 영양·고령·의성 남씨, 영월 엄씨, 전의 이씨 등은 잇따라 종친회 모임을 갖고 혈연공동체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갓 이민 온 종친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장학금을 주고 종친의 식당과 가게 등 비즈니스를 적극 이용하는 등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영월 엄씨 종친회의 엄익청 회장은 “요새야 엄씨가 많아졌지만 이민 초기만 해도 엄씨를 만나면 ‘어이구’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가웠었다”며 동문회 및 각종 모임과 달리 이해관계를 떠난 혈연의 끈끈함이 종친회만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종친회만의 또다른 특징은 항렬에 따른 위계 관계. 21세기에 ‘항렬이 웬 말’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몇몇 종친회는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나이가 아닌 항렬에 따른 서열을 고수하고 있다. 영월 엄씨 종친회는 아저씨와 조카란 항렬에 따른 호칭이 낯설지 않다. 반면, 전의 이씨는 첫 만남에서 항렬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했지만 ‘나이 우선제’를 적용키로 하는 등 연로한 종친이 혹시라도 불편한 상황을 맞는 불상사(?)를 방지하고 있다.
한인들의 뿌리에 대한 관심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에게 자연스런 역사 공부 및 정체성 심어주기의 좋은 방법이 되고 있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김해 본관의 김모(39)씨는 “아이들에게 조상이 왕족이라고 말했더니 아이들이 큰 관심을 갖더라”며 “어렵게 한국 역사 공부를 시키는 대신 자연스럽게 집안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친목과 화합이 주목적인 종친회는 각종 선거에서는 적극적인 이익집단으로 외투를 바꿔 입기도 한다. 남씨 종친회는 최근 LA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한 남문기 회장을 적극 지원할 기세다. 남씨 종친회의 남영환 회장은 “같은 가족인데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종친회의 등장이 반드시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미국 이민 5년차인 이모(32)씨는 “한인사회에 넘쳐나는 것이 각종 단체인데 별 다른 공유점도 없이 핏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모일 필요가 있겠냐”며 “이익집단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밝혀 종친회에 회의적인 젊은층의 정서를 반영했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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