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우리 고유의 무도이며 한인 사범들의 노력으로 미국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인들이 미국 태권도계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위상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대뉴욕지구 태권도협회의 박연환 회장(54)은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한인사범들이 일치 단결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모든 태권도인이 공감하는 생각이기에 지난 19일 「태권도인의 밤」이란 이름으로 열린 협회의 연례만찬에서는 한인
태권도의 중흥과 제2의 도약을 다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태권도는 태권도인 뿐만 아니라 한인이면 누구나 자랑거리로 아는 한국의 고유 무도이다.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세계 각국으로 나간 태권도 사범들이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존재를 알리고 위상을 높혔다. 한인 사범들의 노력으로 일본의 가라데만 알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태권도가 보급됐고 태권도가 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태권도가 미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한인들이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더우기 한인들의 불화와 알력, 무관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제2 도약을 다짐한 태권도인들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같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뉴욕지구 태권도협회는 이를 위해 우선 오는 6월10일 퀸즈칼리지에서 대규모의 국제 태권도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미국 동부지역의 한인 도장이 대거 참가하는 이 대회에는 서부지역등 다른 지역의 사범들과 미국 태권도연맹의 지도자들도 초청할 것이라고 한다. 박 회장은 이 대
회를 통해 한인 태권도계가 미국에 강력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줌으로써 미국 태권도계에서 한인사범들의 위상을 강화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사실 지금 태권도계의 상황을 볼 때 한인 태권도사범들이 무언가는 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태권도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고 미주 한인사회에 미친 공로도 실로 엄청나게 크다. 이민 초창기에 미국에 정착한 태권도인들은 주로 1960년대에 유학으로 도미했다가 태권도장을 연 사람이다. 뉴욕에서는 한인회장을 역임한 조시학씨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 후 이민이 본격화하면서 수많은 태권도 사범들이 미국으로 모
여들었다. 이들이 도장을 열고 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미국에는 태권도 열풍이 불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면 모두 태권도 사범으로 오해를 받아 흑인들도 한국인이라면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또 태권도가 한인들의 생업으로 이민정착에 큰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 회장도 이와같은 전형적인 태권도 사범이다. 8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운 태권도 8단의 고단자이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을 나오자마자 정부에서 선발한 해외 파견 태권도 교관으로 1978년 아프리카의 레소토에 갔다. 2년간 근무한 후 1980년
뉴욕으로 와서 형님이 하고 있던 롱아일랜드의 태권도장을 물려받았다. 지금까지 26년간 도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평생을 태권도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
대뉴욕지구 태권도협회는 김상수씨(작고)를 초대회장으로 32년 전에 발족하여 태권도인들의 친목도모와 각종 행사 참가 등 활동을 해오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02년 회장에 당선되어 4년 임기를 마쳤으나 2006년에 재선되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상태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그
가 태권도협회를 통해 태권도 중흥을 위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크게 기대된다.
태권도가 미국에서 크게 보급된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박 회장의 말이다. 처음에는 수줍음을 타서 도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망설이던 어린이도 6개월쯤 태권도를 하고 나면 자신감
과 담력이 넘치는 활발한 어린이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또 태권도는 무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에 대한 효도와 공경심을 배양하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수양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인 부모들이 자녀들을 기꺼이 도장에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태권도 도장에서는 「차렷」 「경례」 등 한국말을 쓰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걸어놓고 있다. 또 훈련이나 시합 때 입는 도복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달고 있다. 태권도를 하는 외국인들은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메카를 생각하듯 한국을 사랑한다. 태권도의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미국에서 태권도가 크게 보급되면서 체육학과에서 태권도 과목을 가르치는 대학들이 점점 늘고 있다. 박 회장에 따르면 뉴욕지역에만 해도 웨스트포인트 육사, 프린스턴, 컬럼비아, 롱아일랜드대학 등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고, 커네티컷의 브릿지포드 대학에서는 작년부터 태권도를 가르치는 무도학과를 설치, 김용범 사범이 학과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도 지난 1987년부터 롱아일랜드대학에서 20년째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태권도 사범으로 미국의 정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들도 많았다. 1970년부터 워싱턴에서 활동한 준 리 사범(이준구)은 미국 의회를 비롯한 정계 인사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던 인물이다. 그는 부시 전대통령이 하원의원이던 시절에 태
권도를 가르쳤고 지금의 부시대통령에게도 어릴 때 태권도를 가르쳤다. 아칸소주의 이행웅 사범은 클린턴 전대통령의 주지사 시절에 태권도를 가르쳐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이밖에도 태권도장을 하는 많은 사범들이 미국인 유명인사들을 제자로 가르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리하여 한인 태권도사범들은 미국 태권도계를 이끄는 중추역할을 했다. 1982년 미국올림픽위원회 산하에 미국 태권도연맹이 발족하면서 한인사범들이 연맹을 이끌게 되었다. 한인사범들은 미국 올림픽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뉴저지의 박동근 사범은 미국 올림픽팀의 헤드코치
를 역임했고 박 회장도 1988년 미국 올림픽팀의 코치를 맡았다. 그런데 미국태권도연맹의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한인들간에 세력다툼이 벌어져 회칙을 바꾸는 등 변칙사태가 발생했고 법정소송까지 비화됐다. 이 때문에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 한인사범들이 모두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한국 태권도를 중흥시켜 태권도인의 위상을 높히자면 무엇보다도 한인사범들의 단합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서로 갈라진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고 흩어진 사람들을 규합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출신 도장에 따라 무슨 관이냐를 따졌는데
이제는 출신 대학에 따라 끼리끼리 뭉치기 때문에 학연, 지연등을 타파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한다. 그러나 한인사범들이 단합과 화합을 통해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앞으로 몇년이 지난다면 태권도의 주도권이 완전히 외국인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박 회장은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한인사범들이 한인 태권도 위상높이기에 적극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특히 고단자 선배 사범들의 모임이 활성화하여 이 운동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태권도를 통해 한국이 더 잘 알려지고 한인사회의 위상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비단 박 회장만의 소망이 아니라 모든 한인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래서 한인 태권도사범들이 단합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라는 박 회장의 말에 누구나 큰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태권도계에 대한 한인사회의 기대가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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