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호’가 마침내 침몰했다. 재미 과학자의 한사람으로서 또 줄기세포 연구자로서 그간 느껴왔던 착잡한 심정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자 한다.
줄기세포 생물학이란 분야는 매우 새로운 학문이다. 1998년 위스컨신 대학의 제임스 톰슨교수가 세계 최초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을 때 온 학계는 인간의 발생학, 분화연구와 신약개발 연구에 사용될 그 잠재력을 환영하였다. 무엇보다 배아 및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인간의 난치병 치료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수년전 서울대 문신용 교수가 이끄는 줄기세포사업단을 발족했다.
지난 2004년 황우석, 문신용 교수팀의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가 터지기 시작했으며 필자 역시 한인과학자로서 흥분과 자부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의실, 학교, 학회 등에서 동료교수나 학생들을 대할 때면 내가 한국인 과학자라는 사실만으로 뿌듯했다.
‘황우석 쇼크’의 이상징후들
그런데 필자는 서울 줄기세포 심포지엄에 초청되어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심각한 이상징후들을 감지하게 되었다. 우선은 체세포줄기세포(2004년 논문)나 맞춤형 환자체세포 줄기세포(2005년 논문)가 얻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수년내 난치병환자를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과장되고 있는 현상이었다.
사실상 맞춤형 줄기세포란 면역거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며 이들이 실제 치료에 쓰이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간 배아줄기 세포주들을 이용하여 각 질병에서 필요로 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와 또 그의 동물실험, 그리고 암세포의 유발을 완전히 차단시킬수 있는 연구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 연구 자체가 세계적으로 아직도 초기단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절박한 상황에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그리고 전문지식이 없는 국민을 향해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주는 것은 기만에 가까운 행위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문 교수 등에게 보다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정직한 기대감’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누차 권유했으나 그의 불평은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둘째로 우려된 사실은 2004년 논문 이후 황 교수팀이 국내의 연구자들과 협력을 강화하기보다 해외 유명 학자들과의 연계에 의존하려는 사실이었다.
셋째로 상상을 초월한 연구비가 황 교수팀에 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편중된 방향으로 수백억의 연구비가 한 팀에 주어진다는 것은 잠재력이 있는 수백명의 생명과학자들의 연구비가 없어진다는 뜻이며 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일 수 있다. 실제로 필자는 많은 신진과학자들의 연구비 고충과 불평, 그리고 이에 따른 한국 과학계의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과학적 국치’라고도 볼수 있는 이번 사태에서 황 교수 개인에게만 손가락질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진실과 정직을 짓밟고 그 위에 바벨탑을 쌓을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필자 자신을 비롯한 국내외 과학자들도 여론의 질책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들의 양심적인 견해와 문제제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 생명과학의 장래
이번 파동으로 한국 생명과학자들의 해외 논문발표가 원천적으로 힘들어 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불필요한 우려라고 본다. 물론 앞으로 세계적 저널들은 보다 세심하고 철저하게 논문을 심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뒷받침되는 훌륭한 데이터와 논문이 단지 한국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거부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며칠 전 우리 연구소의 세미나 연사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이러한 화제들이 나왔다. 참석한 중진교수들 가운데 한명은 하버드의대 석좌교수이며 권위 있는 저널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황 교수의 건은 유감스러우나 그것과 앞으로 한국에서 나오는 논문의 심사는 전혀 별개의 이슈”라며 한국 생명과학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한국의 줄기세포와 생명과학은 황우석 쇼크와 파장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황교수 팀 외에도 국내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 이목을 끄는 탁월한 연구자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고 이들이 향후 줄기세포 연구를 충분히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황교수팀에서 훈련받은 젊은 연구원들의 연구 진로가 막히지 않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이번의 모든 과정이 국내의 소장 생명과학자들과 MBC에 의해서 파헤쳐지고 서울대 조사위에서 확연하게 밝혀짐으로써 한국의 자체 자정 및 검증능력이 온 세계에 드러났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그 조작의 증거들이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대로 수백억씩의 예산과 국내외 연구진들의 공중누각 연구가 수년간 진행되다가 외국 기관이나 학자들에 의하여 폭로된다면 도저히 수습불능의 상태까지 갔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학계와 정부와 언론이 깊은 자성과 새로운 각오로써 지혜로운 방향을 잡아간다면 한국은 명실공히 과학입국과 과학선진화를 이룩할 것으로 본다.
김광수
하버드 의대
분자신경 생물학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