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씨는 최근 다섯번째 신보(EMI) ‘쇼스타코비치’를 발표하자마자 이탈리아로 날아가 산타 세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여섯 번째 음반 ‘랄로 협주곡’(EMI)의 녹음작업을 했다.
유명 음반사 EMI 전속 연주자인 한나씨가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음반은 지난달 유럽에 이어 이달 5, 6일 한국과 일본에서 발매된데 이어 내달 미국 시장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새 음반이 발표될 때마다 평론가들로부터 격찬받는 한나씨는 이탈리아 여행길에도 어머니 서혜연(46)씨와 함께 했다.
어릴적부터 한나씨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서씨는 한나씨가 줄리어드 예비학교 재학 시절 언제나 무거운 첼로 케이스를 들고 다니며 뒷바라지 하더니 딸이 스물 두 살의 처녀가 다 된 지금도 언제나 첼로를 챙겨주는 자상한 엄마이다. 서씨가 딸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 ‘그래 잘했다, 넌 할 수 있어’라며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면 한나씨의 아버지 장용훈(50, KOTRA 뉴욕 무역관 근무)씨는 딸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꾸지람을 하는 엄격한 아버지였다.
한나씨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된 후에도 다양한 음악을 섭렵하며 깊이 있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자기 수양을 쌓는 성숙한 연주자가 된 데는 부모님의 노력과 관심이 결정적이었다.세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한나씨는 진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빨랐지만 좀처럼 피아노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고 흥미를 갖지 못했단다. 처음부터 연주자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가 없어 외로워할 딸아이를 생각, 음악을 가르치려 한 것이었다.
아버지 장용훈씨는 “초등학교 진학 후 주변의 권유로 악기를 바꿔 첼로를 시작했지만 영 마음을 잡지 못하던 한나가 한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지도를 받으며 첼로란 악기에 처음으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며 연습보다는 함께 놀아주고 첼로와 친숙해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지도 방법이 효과가 있었던 것을 보니 집중적인 레슨 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음악을 배우는 환경이 한나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모처럼 마음을 잡았으나 따르던 교사가 유학을 떠나고 새로운 레슨 교사를 찾던 중 외삼촌이 사다 준 한 첼리스트의 연주가 담긴 테입이 한나씨가 첼리스트의 길을 걷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연주자는 1973년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영국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악기가 노래하고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뒤프레의 연주는 어린 그녀에게 충격과 감동을 전해 주었다.이때부터 첼로에 빠져들게 되었고 장씨 부부는 딸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후 좋은 스승을 찾아주고자 첼리스트들의 연주회를 쫓아 다녔다. 한나씨가 10세 되던 해 장씨는 다니던 안정된 직장인 갤럽연구소를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뉴욕으로 건너왔다. 줄리어드 예비학교측이 한나씨의 연주 테입만 듣고 학기 중간임에도 입학을 허가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한나씨는 열한 살의 나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 나가 1등을 차지,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바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우승을 위해서가 아닌 로스트로포비치와 같은 훌륭한 연주자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콩쿠르에 내보낸 부모님 덕분에 은사인 로스트로포비치와 인연을 맺게 됐다.이후 로린 마젤 등 거장 지휘자들과 무대를 누비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우뚝 서게 된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를 화려한 솔로 악기로 발전시킨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 레오폴드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들.
10대 후반에 이미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등을 스승이자 동료로 둘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던 첼리스트이며 한나씨를 발굴한 인물이다. 특히 한나씨의 다섯 번째 음반에 수록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한 곡이다.무남독녀지만 어릴적부터 자유롭게 자란 한나씨는 음악대학이 아닌 하버드대 인문학부에 진학, 철학을 공부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한 로린 마젤과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씨 등이 음악 외 다른 학문을 접해보도록 권유했기 때문이다. 장씨 부부는 음악을 공부하는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로 ‘레슨을 어느 정도 받았는가’에 대해 ‘너무 레슨에 치중하기 보다는 아이의 발달 과정에 맞는 지도와 독창성 개발이 중요하다‘고 일러준다. 한나씨는 미국으로 건너 온 후 음악교육은 따로 받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부모님이 책도 많이 읽게 하고 첼로 곡 외에도 교향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었다.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알려주기 위해 골고루 자양분을 섭취하도록 도와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1년에 49~50회 연주회를 갖는 한나씨는 내년 LA 필하모닉과의 협연과 유럽 투어에 이어 2007년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 장씨는 딸이 바쁜 것도 좋지만 좋은 짝을 만나 외손주 3~4명쯤 안겨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연주자로서의 성공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딸의 모습이 더 기다려진다고 했다.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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