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그에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 하고 물어본 일이 있다. 시원치 않은 대답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낀 나는, 정말로 끝내주는 표정관리가 필요한 게 바로 이런 때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 질문에는 무신경한 듯 그는 팔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여가며 운전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모든 사물은 철학적인 고찰을 통해 바라보아야 하고, 문제점은 충분한 고뇌를 통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있던 내게, 그의 한 마디는, 나의 이성을 무너뜨린 것은 물론이고, 눈썹을 치켜세우며 노골적으로 화를 내는 감정적인 여자로 돌변하게 했다.
예전에, 정신적 일체감은 사랑을 함에 있어 그 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슬퍼졌다. 영혼의 교감과 뜨거운 심장 없이는, 그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날뛰는 거지본성에 충실히 입각한 거친 몸부림일 뿐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 주린 배를 쾌락으로든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동경 혹은 연민으로 채우게 되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그러니 그가 “당신이 나한테 어떤 존재냐구? 글쎄.” 하며 말을 돌렸을 때 나는 센티멘탈리즘에 빠진 10대 소녀처럼 고개를 돌려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당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예요?” 하며 화제를 돌렸어야 했다.
나도 그에게 완벽한 여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있는데, 나만 이기적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연인’ 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되묻고 의심해야 하는 우리가 슬퍼서,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희생을 우리가 할애해야 하는지, 나는 알고 싶었을 뿐이다.
요즘 젊은 연인들의 말속에는 온갖 달콤함이 배어있다. “죽도록 사랑하고, 영원히 함께 할께.” 라는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조심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게 되는 내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연인’ 이라든지, ‘존재’ 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그에게도 나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어제 우연히 마주친 글귀 중에 이런 게 있다. “하늘엔 말이야, 하늘엔 별이 있잖아.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게 잘 보이는 것은 어둠이 있기 때문이지. 별을 반짝이기 위해 존재하는 어둠.”
그가 나에게 그런 느낌일까,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그런 느낌일까, 생각해본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개월 후쯤에는, 아니면 내후년쯤에는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김영아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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