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 뽑아내고 콩 심어 굶주림서 해방”
11월11일 오후5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빵집에서 아주 특별한 ‘난’(Naan·아프간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전통 빵)이 첫 선을 보였다. 비영리단체 NEI(Nutrition&Education International·대표 권순영)가 밀가루에 콩가루를 첨가해 특별 제작한 이 빵은 단백질을 강화한 일종의 영양식품이다.
비영리단체 NEI 콩심기 프로젝트 2년여 만에 결실
콩 첨가해 만든 빵 영양· 맛 좋고 경제성까지 갖춰
정부서 땅 제공불구 사업비 턱없이 부족 “후원 절실”
이 나라 국민들이 겪고 있는 만성적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 식품으로 평가되는 이 빵을 바라보는 NEI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NEI 설립자로 지난 2년6개월간 휴가와 자비를 들여 이곳을 7번이나 방문한 권순영 박사가 잠시 후 빵을 한 조각 떼어내 먹으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세계적인 식품업체인 네슬레 USA의 의료식품 개발담당 이사로 일하는 권 박사가 아프가니스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3년 6월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그는 “어린이의 20%가 다섯 살 이전에 설사와 폐질환으로 숨지고 16세 전후에 결혼해 평균 6명의 자녀를 낳는 여성 여섯 명 중 한 명이 분만 시 사망하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뒤 마음 깊은 곳에서 그 곳을 향한 열정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영양학자인 권 박사는 아프간 여성, 농부, 정부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만난 뒤 이 나라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해결할 수 있는 타개책으로 콩을 들고 나왔다. 2004년 북부 마자르샤리프에서 시작된 콩 시범농장은 사업은 2005년 12개 주로 확대됐고 5톤의 콩이 생산됐다.
좋은 수확에 고무된 권박사는 NEI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1∼19일 또 한번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다. 콩심기 프로젝트를 아프간 국책 사업으로 확정하기 위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콩으로 만든 빵을 준비한 것도 아프간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콩의 유용성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0개월 동안 철저히 준비해 온 덕분이었을까? 12일 오전 농림부 장관과의 미팅을 시작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여성부 장관과의 미팅에서 모두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17일에는 농림부·보건복지부·여성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NEI의 콩심기 프로젝트를 아프간 국가사업으로 확정 발표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마수드 잘랄 여성부 장관은 “콩이 여성과 어린이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유니세프 등 유엔 산하기관과 협조해 콩으로 만든 빵이이 학교급식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는 30에이커의 땅을 99년간 무상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장을 짓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NEI가 계속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NEI는 지금까지 콩 프로젝트를 위해 10만달러 이상을 사용했다. 물론 이 돈은 권 박사를 포함한 NEI 자원봉사자와 일부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것이지만, 공장을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다행히 언론에 권박사의 스토리가 보도된 뒤 후원자가 꾸준히 늘어 NEI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는 50명을 훌쩍 넘겼다.
그 중에는 잘 나가는 사업체를 접고 NEI공장에서 일하겠다는 한인 봉제공장 사장도 있고, 무료로 봉사하는 워싱턴 DC의 유명 로비스트 변호사와 디즈니사의 파이낸셜 전문가도 있다. 아프간 출신으로 뉴욕에서 성공한 백만장자도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권 박사는 “이제 프로젝트가 너무 커져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만으로 NEI를 꾸려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졌다”며 “아프간의 죽어가는 영혼을 기억해주는 한인 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후원문의 (626)744-0270 또는 www.nei-intl.org
남편을 돕기 위해 사업을 그만 둔 애니 권씨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영양실조에서 구해낼 콩이 첨가된 난을 굽고 있는 빵집 앞에 서 있다.
농림부차관 “콩 덕에 양귀비 1년새 26% 줄어”
아프간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콩이 첨가된 영양 빵을 한입 베어 문 모하메드 샤리프 농림부 차관은 “맛있다”라는 한마디로 소감을 밝혔다. 2003년부터 NEI 콩 프로젝트를 후원해 온 샤리프 차관은 콩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국민들의 영양증진 외에 농부들의 수입증대와 그로 인한 양귀비 재배 감소 효과를 지적했다.
샤리프 차관은 “아무리 영양에 좋아도 경제적 이익이 안 돌아온다면 콩을 심을 농부는 한 명도 없다”며 “콩은 동물사료로도 활용할 수 있어 아프간의 주요작물인 면화나 밀에 비해 평균 수익이 훨씬 높다”며 NEI의 콩심기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올 해 아프간의 양귀비 생산은 2004년에 비해 26% 감소했다”며 “콩으로 만든 난과 두유처럼 좋은 제품을 생산해 판로를 개척한다면 콩 프로젝트의 성공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12일 모하메드 샤리프 농림부 차관이 콩이 첨가된 난을 들고 권순영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NEI는 어떤 단체
권순영 박사 등 한인· 타민족 무보수 봉사자들
잘나가던 사업 접고… 남편따라… 50여명 동참
한인 권순영 박사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NEI(Nutrition& Education International)에서는 한인과 타민족 자원봉사자들이 아프간의 여성과 어린이를 기아에서 구해내기 위해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른 비영리단체와 다른 점은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모두 낮에는 자신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일과 후 여가 시간을 쪼개 NEI 일을 한다는 것. 물론 단 한 푼의 대가도 받지 않는 순수 자원봉사자들이다.
50여명의 NEI 멤버 중 한인 자원봉사자는 이번 아프간 방문에 동참한 LA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조경섭씨와 캐나다 사업가 길버트 강씨, 1.5세 조셉 김씨, 권 박사의 부인 애니 권씨 등 겨우 10명 내외.
남편을 돕기 위해 잘 나가던 미술학원을 정리한 뒤 NEI일에 전념하고 있는 애니 권씨는 “한인들은 우리 동포인 북한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이라크 문제에는 관심이 많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잊혀진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경섭씨와 길버트 강씨는 아예 사업체를 정리하거나 자녀에게 물려준 뒤 내년 시작될 NEI 공장건설에 헌신할 생각이다. 조씨는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늙어서 기력이 쇠하기 전에 이웃을 위한 일도 해야죠”라며 웃는다.
내년1월 결혼을 앞둔 조셉 김씨는 아예 신혼 살림을 아프가니스탄에 차릴 생각이다. 김씨의 따뜻한 마음에 감명 받은 예비신부도 흔쾌히 동의했다. 김씨는 “공장이 제 자리를 잡아 아프간 사람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을 때까지 2년 정도 카불에 머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NEI는 알음알음을 통해 필요한 자원봉사자를 충원했지만, 2년 넘게 추진해 온 콩심기 사업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공식 사업으로 결정돼 한인 자원봉사자와 후원자가 절실한 형편이다.
글·사진 이의헌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