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가을이 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1년 내 비가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풍요로운 계절이다. 오랫동안 비를 기다리던 나무들이 춤을 추듯 생기가 돌고 갈색의 들풀들이 초록으로 변한다. 공기가 비에 씻겨 청명해지고 내가 사는 선랜드에는 뭉게구름이 앤젤레스 포레스트의 산등성이를 솟구쳐 올라간다. 산은 청 빛이 나는 초록색으로 변하며 촉촉하고 맑은 공기가 청명하게 폐부에 스며든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가을과 겨울을 좋아한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하늘색을 주조로 한 그림은 주로 겨울 하늘의 절묘한 색깔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 고인 물에 비치는 하늘, 떨어지는 빗방울의 고운 선, 창에 어리는 물방울, 겨울 풍경의 곳곳이 시선에 반가운 관찰의 대상이다.
날씨가 싸늘해지면서 아침과 저녁의 빛깔도 점점 더 음영이 짙어진다. LA를 사는 기쁨 중에 가장 좋은 게 음악을 들으며 프리웨이를 달리는 맛이다. 변화무쌍하고 풍요로운 음울한 풍경속에 음악도 훨씬 감미롭고 깊은 선율로 가슴에 스며든다.
그림이 끝난 밤 11시, 몰입해 있던 마음은 밤의 풍경을 훨씬 더 광대하고 깊은 마음으로,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에 가득한 마음으로 지나가게 되는데 그때 듣는 음악이 밥 딜런(사진)이다. 나는 지난 30년 늘 밥 딜런을 들어왔다. 최근 PBS는 미국의 매스터들이라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마틴 스코르세이지 감독 작품인 ‘밥 딜런’을 방영했다.
딜런은 음유시인이고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데 특히 음울한 날씨에 들으면 심장을 녹이는 듯한, 폐부의 아픔을 녹이는 듯한, 강렬하고도 명징한 보이스를 지니고 있다. 그는 비이트 제네레이션에서 새로운 세대를 향한 횃불을 이은, 미국 문화를 변화시킨 천재로 일컬어지는데 마치 한 시대의 정령이 그의 두뇌와 가슴, 목소리를 통해 미국 대중이 말하고 싶으나 말할 줄 모르는 시대의 고뇌를 거울에 비추듯 기가 막히게 현란하고 첨예한 시어로 노래한다.
나는 내가 스무살에 도착하여 살게 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늘 궁금했다. 그리고 온 촉각을 세워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을 감지하고 싶었다.
딜런의 강인하고 차가운 예지와 정직하고 뜨거운 인간애, 한 시대의 총체적 영혼을 꿰뚫는 듯한 섬세한 감수성과 신랄한 비판을 들으며 나에겐 늘 낯설기만 한 미국과 미국 문명에 대한 불신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따뜻하고 정직한 사랑의 노래들은 힘겨웠던 청춘의 고뇌를 달래주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조하나의 비전’(Vision of Johanna), ‘꿈의 연속’(Series of Dream)과 ‘이른 아침의 비’(Early Morning Rain)이다. 그는 64세인데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서 공연한다. 그의 공연을 들으며 난 그림을 배웠다. 자신의 모든 것 영, 육, 혼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천사와 악마가 함께 한 듯한 그의 맑은 눈빛을 바라보는 것 또한 기막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데 늙은 그의 모습은 자신의 전 존재로 한 시대의 고락을 표현한 시인답게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워 보여 그의 내면의 삶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그는 닉슨, 부시 같은 대통령을 둔 미국의 고뇌를 이미 20년 전에 노래했다. ‘미국 대통령이라도 때로는 발가벗겨져야 한다’(Even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sometimes has to get naked)고 반전운동의 기수로서 명성의 최고조에 있을 때, 정치는 비좁아서 던져버린다고 했던 그는 아웃사이더였고 스스로의 길을 간 삶의 예술가였다. 그의 노래 ‘전쟁의 매스터들’(Masters of war)을 들으며 이라크 전쟁을 겪는 불우한 미국의 고뇌를 다시 본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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