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은 한인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자선구호기관이다. <하루 1불, 한달에 30불>이란 구호로 후원자와 빈곤국의 아동을 결연시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구호기관이다. 이 월드비전에는 미주한인사회에서 수많은 한인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코리아데스크의 미동부 지부를 맡고 있는 심장우 지부장(73)이다.
심 지부장이 월드비전과 인연을 맺은 것은 현재 미국 월드비전 뉴욕지부의 책임자로 있는 존 크라우드씨가 10년 전 퀸즈한인교회를 찾아 심씨에게 한국인 코디네이터를 맡아줄 것을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당시 퀸즈한인교회의 선교부장이었던 심씨가 월드비전에 관여하면서 이 교회가 월드비전의 활동에 후원금 5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심씨는 월드비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한인들의 기관인 코리아 데스크가 생기자 미동부지부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미국 월드비전의 고문을 겸해서 맡고 있다.
월드비전은 한국전쟁 중인 1950년 한국에서 탄생한 기관이다. 미국 선교지의 종군기자로 한국에 온 복음주의 전도자인 밥 피얼슨 목사는 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고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지게 하는 것들로 내 마음도 찢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고아 돕기에 나섰다. 미국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직접 찍은 영상자료를 들고 다니며 미국교회의 도움을 호소하여 피난지 부산에서 한경직 목사와 함께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돕는 사역을 한 것이 월드비전의 시작이다.
월드비전은 한국에서 고아원, 모자원의 설립 운영과 신학교의 장학사업을 하면서 구호 범위를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넓혔고 지진과 홍수, 가뭄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도 구호의 손길을 뻗쳤다. 제 3세계의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역개발 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온 월드비전은 북한이 심각한 식량위기에 부딪히자 1994년부터는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이리하여 현재 월드비전은 세계 100여개국에 5,000여개의 프로젝트로 8,500만명 이상의 수혜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세계 최대의 비영리 기독교 구호기관으로 자리잡아 국제적십자사와 함께 세계 구호기관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월드비전은 월드비전 국제본부가 있고 한국을 포함한 각 나라의 월드비전이 있다. 월드비전 코리아 데스크는 미국 월드비전의 한국인 특별기구이다. 이 코리아 데스크는 1996년 시애틀의 정남식 목사와 송천호 목사가 미국 월드비전의 특별기구로 발족하여 지금도 본부를 시애틀에 두고 있다. 그간 활동은 활발하지 못했는데 1년반 전 뉴욕에 동부지부가 생겼고 그 후 LA에 서부지부가 생겨 미국의 동서부를 관할하면서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미동부지부는 발족과 함께 심 지부장이 맡아 뉴욕, 워싱턴, 시카고 등에 운영위원회를 조직했고 이달 들어 아틀란타에도 조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인들을 대상으로 아동결연운동을 펼친 결과 2년도 안되는 기간에 5,000명이 넘는 아동에게 후원자를 결연시켜 주는 성과를 올렸다.
심 지부장은 퀸즈한인교회의 장로로 지난 36년간 이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해온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한진관 목사가 퀸즈한인교회를 1969년 7월에 창립했는데 그는 그 해 10월부터 그 교회의 교인이 되었으니 퀸즈한인교회의 산증인인 셈이다. 한 때 퀸즈한인교회에서 많은 교인이 떠났을 때도 그는 교회를 지키면서 현재와 같이 큰 교회로 성장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는 젊은시절을 군대에서 보냈다. 육사생도 2기 출신으로 6.25전쟁 때 국군의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고 한다. 1958년 소령으로 제대한 그는 이듬해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미했다. 그러나 미국에 온 후 사정이 바뀌어 켄터키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시스템 애널리스트로 모건 스탠리 등 금융기관에서 일했다. 1965년 뉴욕에서 약학공부를 하고 있던 현재의 부인을 만나면서 뉴욕에 정착하였으니 그의 뉴욕생활이 이미 40년을 넘었다.
심 지부장이 이끌고 있는 코리아 데스크 미동부지부에서 그림자처럼 그를 가까이서 돕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무총장인 위화조씨이다. 위씨는 한국 월드비전에서 일하다 지난 1999년 신학생으로 유학차 도미했다. 그는 2002년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코리아 데스크의 미동부지부가 생기자 사무총장을 맡아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원래 사회사업을 공부했고 한국 월드비전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 일이 무엇보다도 적성에 맞다고 한다.한국은 1950년 월드비전이 생긴 이후 이 기관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았다. 1991년까지 40만이 넘는 어린이가 도움을 받았고 42만명의 나병환자가 치료를 받았으며 수많은 지원사업, 개발사업으로 혜택을 받았다. 금액으로 따져서 수혜 규모는 5,800만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1991년부터는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뀌었다. 1950년 월드비전의 첫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1991년 수혜국에서 지원국으로 바뀐 첫번째 나라가 된 것이다.
그래서 월드비전의 코리아 데스크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으니 이제는 갚자는 캠페인을 펴고 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하였을 때 현지에 구호품을 보냈고 현재도 재건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가 발생한 뉴올리언스지역에도 재빨리 구호품을 보내 이재민을 도왔다. 심 지부장은 한인들이 미국에서 고생하면서 번 돈을 이렇게 남을 돕는데 아낌없이 주는 것을 보면 너무도 고맙고 기쁘다면서 이런 한인들이 큰 축복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쓰나미 성금 사태에 대해서 그는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월드비전으로서는 방송국 측이 요구한 계획서를 제출했는데도 성금 전달이 지연되어서 조
속한 전달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말썽이 나자 코리아 데스크 본부에서 성금 수령을 유보하라고 해서 한인들의 정성어린 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7년 전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심 지부장은 월드비전 코리아 데스크의 일을 맡으면서 은퇴 전 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한인들이 월드비전을 통해 이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그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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