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서양문명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을 들라면 예수를 제외하고는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 모두 한 때는 기독교를 적대시 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극적인 체험을 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일단 개종한 후에는 어떤 기독교인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결국 그러다 순교하고 만다.
기독교 최대 신학자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젊은 시절 당시 기독교의 라이벌이었던 마니교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러던 것이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지우스의 감화를 받고 나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게 기독교의 신학적 토대를 탄탄히 닦는데 일생을 바쳤다.
개종한 사람들이 보통 신자들보다 더 깊고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은 고대 기독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들어 미국 사상논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소위 네오콘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미국 ‘네오콘의 아버지’로 불라는 어빙 크리스톨은 대학생 시절 극좌파인 트로츠키 추종자였다. 지금 아내이자 역시 보수파 사학자로 유명한 거트루드 힘멜파브도 트로츠키 클럽에서 만났다. 그의 아들 빌 크리스톨은 지금 ‘네오콘의 기관지’ ‘위 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이다. 한마디로 네오콘 가족인 셈이다.
역시 네오콘의 쟁쟁한 이론가로 보수파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원인 조수아 무라브칙은 조상 대대로 공산주의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또한 젊었을 때는 ‘청년 사회주의자 동맹’의 전국 의장을 맡을 정도로 알짜 공산주의자였다. 그가 쓴 사회주의 몰락사 ‘지상 낙원’(Heaven on Earth)을 보면 그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와 이론에 얼마나 정통해 있는 지 알 수 있다.
좌파 지식인 양심선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극좌의 아들’(Radical Son)의 저자인 데이빗 호로위츠 또한 공산주의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골수 마르크시스트였다. 그러나 스스로 소위 ‘진보주의’ 운동을 하면서 그 이론과 실체가 얼마나 다르며 그 추종자들의 위선과 기만에 환멸을 느껴 이를 뒤엎는 선봉이 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뉴 라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뉴 라이트’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 경제, 북한의 인권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종래 보수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점은 ‘올드 라이트’가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했거나 이에 침묵했던 구세대들로 이뤄진 반면 이들은 젊었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운동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현정부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소위 ‘386’들의 “우리가 독재와 싸우고 있을 때 너희는 뭐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한 때는 어깨를 맞대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한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비리와 실패한 좌파정책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현 좌파 집권층에게는 최대 위협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고건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등이 모두 이들과 손잡으려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세상에는 세상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과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항상 소수지만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다. 참된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것이 이상 사회인가를 꿈꾸게 되며 결국 그것을 실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뉴 라이트’ 운동이 얼마만한 결실을 맺느냐가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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