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이내 거리 비행기 타지말고 운전하라”
현실성 없는 예산 삭감에 주재원들 골탕
프로젝트 연기 일쑤, 업무 효율도 떨어져
최근 북가주로 출장을 다녀온 한 정부기관 LA주재원 A씨. 업무 폭주에 피곤해서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갔다오고 싶었지만 편도 6시간을 혼자 차를 몰고 다녀올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부터 예산 절감을 위해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10시간 이내 거리 운전 지침 때문이었다.
“그런 내부 지침이 문서로 된 건 아니지만, 상사들도 직접 차를 몰고 다녀오는 데 제가 어떻게 비행기 타겠다고 말하겠어요. 그냥 오랜만에 시원하게 드라이브 한번 한 셈 치죠.”
이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한국 정부의 일부 예산 배정 방식 탓에 정부기관 주재원들의 업무 효율성도 떨어지고 있다. 추진해야 할 일을 예산 부족으로 축소해서 하기도 하고 아예 미루기도 한다.
한 LA 정부기관 책임자 B씨는 올해 들어 부쩍 “요새는 너무 조용하십니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지난해보다 많이 줄어든 예산 때문에 대외 활동을 줄여 외부 인사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 기관의 예산이 줄어든 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예산 배정이 수치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탓이다. 한국의 기획예산처는 일본, 중국인의 비중을 더 높이 쳐 이 기관의 중국과 일본 지사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반면 미국 지사의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B씨는 “올해는 업무 추진 방향을 좀 내부 역량 강화로 돌렸다고 말을 둘러대지만 힘이 많이 든다”며 “숫자만 따지지 말고 질도 생각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정치적 고려에 의한 예산 배정도 빼놓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3년에 미국 방문 시 CNN 등에는 대규모로 한국 관광 홍보 광고가 방영됐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예산이 줄며 지속적인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잠재 미국 관광객의 반응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대 흐름’이라는 명목 앞에서 지역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관행도 있다. 또 다른 정부기관 주재원 C씨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힘을 얻으며 중국 시장으로 무게가 갑자기 많이 쏠려 미국 시장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부분도 있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 동력을 BT(생명공학)로 정하면서 이쪽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는 데, 미국은 디지털 컨텐츠 강화에 힘이 쏠리고 있어 어렵다”고 말한다.
미국 출장을 와서도 제대로 일을 못하고 돌아가는 한국 공무원의 행태도 결국 잘못된 예산 집행 탓이다. 한국 공무원들은 출장을 와서도 빨리 귀국해야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강박 관념에 주말에도 무리하게 일정을 잡는다. 이로 인해 상대편에 결례를 저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공무원을 많이 접하는 LA 주재 정부 공무원 D씨는 “효율이란 투입량 대비 산출량의 비율을 뜻하는 데 우리는 무조건 투입량을 줄이는 것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에서 며칠을 더 지내더라도 제대로 배워 가려는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성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