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고?
병원 아니요. 정신이 좀 나요?
와 내가 병원에 있노? 집에 가야지.
여보, 며칠 간 더 있어야 해요.
마누라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여보, 내가 여기 있는데 누가 집에 있단 말이요?
내가 며칠 안 가서 마누라가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여보, 헛소리 좀 그만해요. 당신 마누라 여기 있잖소.
마누라가 기다릴 것인데. 난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을까?
검사 결과만 나오면 집에 갈 수 있다고 의사 선생이 말합디다.
마누라가 어디 안 가고 집에 있어야 할 것인데.
당신 마누라 어디 안 가고 이렇게 옆에 있잖소.
가야지.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여보, 당신 집이 어디에 있소?
우리 집? 서대신동에 있죠. 자식들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여보, 지금은 서대신동이 아니고 미국이요, 미국. 자식들도 다 커서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당신 건강이나 빨리 회복하도록 해요.
좋은 집을 두고 왜 이런 좁은 방에 있는지 모르겠다.
강 명도는 병실 안을 살핀다. 강 명도는 미국 들어와 청소 일을 하다 옷가게를 하고 있다. 큰아들은 대학을 나와 미국의 큰 전자회사에 다니고있다. 둘째는 내년 봄에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랜 동안 해오던 옷가게는 요즘 큰며느리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작은 아들만 결혼 시켜 놓으면 가게를 큰며느리한테 넘겨줄 계획을 하고 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미 대륙횡단을 한번 할 계획이다. 그리고 유럽 쪽으로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아내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구 일일 이후 장사가 잘 안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많아 그렇겠지 하면서 별 관심을 안 두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헛소리를 해 처음엔 며느리도 당황했다.
빨리 돈을 벌어 시집을 가야해요?
며느리가 그 소리를 듣고 누구한테 하는 소린가 해 주위를 살폈다. 그때 가게 안에는 자기밖에 없었다.
아버님, 방금 무어라고 하셨어요?
응, 무어라고 했는데? 오늘 왜 이리 손님이 없지?
그러다 삼일 전 낮에 가게에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뇌 단층을 촬영한 필름을 보니 우측 대뇌부에 콩알만한 종양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미국 의사는 조명등에 나타나는 사진 여기저기를 가르치면서 작은 아들한테 무어라고 설명을 하고, 아들은 들고 있는 노트에 열심히 적고 있다. 강 명도의 정신은 멀쩡해 의사의 말을 듣고 있지만 한마디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멀뚱히 앞에 앉아 있는 마누라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아들이 의사의 말을 다 듣고 아버지한테 통역한 것을 정리해 본다. ‘뇌의 조직엔 신경감응이 작동하고 있다. 정신기관에는 감각적 말초 조직에서 분화가 일어난다. 이는 우리의 정신기관에 기억흔적이 있다. 이 기억흔적과 관련된 기능을 기억력이라 부른다. 기억 흔적은 여러 요소들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 속에서만 존재 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부부는 그저 멍하니 듣고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고 하니?
어머니, 지금 검사 중이니 며칠만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엔 지장이 없다니 까요.
그런데, 치매증세는 아니라고 하나?
네. 그런 증세는 아니라고 해요.
안심은 된다만 저렇게 자꾸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꼭 실성한 사람 같아서.
어머니, 조급하게 생각지 마세요. 아버지 정신력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게 믿고 검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지.
강 명도는 의사 사무실을 나와 병실로 돌아왔다. 그동안 옆 침대가 비워져 있었는데 사람이 누워있다.
빨리 집에 가야할 것인데, 언제쯤 간다고 합디까?
네, 이 삼일 더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급히 전할 말이 있는데.
여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내가 여기 있는데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그래요?
내가 가서 꼭 말을 전해야 할 것인데.
여자만이 갖게 되는 섬짓한 예감이 느껴졌다. 남편이 가끔 밤늦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럼 그동안 일을 핑계삼아 여자를 두고 있었단 말인가. 늦게 들어와도 며느리가 옆에 있었고 또 가끔 큰아들도 함께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여자고, 남자고 옆 눈 팔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것이 바람난 강아지들 아닐까. 한국에 있어도 편안한 생활을 할 것인데 치마폭에 싸여 미국와 고생한다고 애처롭게 생각했는데. ‘무엇! 두 살림.’
여보, 내가 당신 아내예요. 정신 차리세요.
강 명도는 잠시 아내를 쳐다보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아니야, 당신은 나의 아내가 아니야.
여보, 정신 좀 차려요. 이젠 자기 마누라도 못 알아보는 구만.
강 명도 부인은 그만 침대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삼십 여 년을 한 이불 속에서 살아온 사람을 못 알아본다니.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는 이럴 수 없어.’
빨리 가서 말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강 명도 부인은 고개를 들면서 생각했다. 지금 남편이 말하고 있는 집과 여자의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집이 어디에 있죠? 그리고 부인의 이름은 무엇이에요?
이런 질문을 했지만 남편의 입에서 어떤 답이 나올지 두려웠다. 그냥 헛소리로 듣고 있을 것을 괜한 질문을 한 것이 아닐까?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집은 산마테오. 1675 렉시톤 에브뉴에 있고 마누라의 이름은 강 미영이예요.
미영은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남편을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미쳤지.’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고 얄팍할 수 있다니, 며칠동안 안달복달한걸 생각하니 픽 하고 웃음이 나온다.
여보, 미안해요. 사랑해요. 빨리 회복돼야 해요.
그대 옆 침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은 언제나 확인하면서 살아야죠.
강 명도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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