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울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항상 자리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원이던 생맥주집을 들렀더니 분위기가 썰렁했다. 다음날 새벽 소문난 해장국집에 갔더니 거기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어느 유명한 냉면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휴가철이 돼서 그런가보다 싶어 식당 주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말도 말라면서 고개를 젖는다. 보통 불경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IMF 때보다 더 심하다고 했다.
한국이 불경기냐 호경기냐를 측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이민 가겠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하는가를 보면 안다. 경기가 악화되거나 북한 문제로 한반도가 좀 긴장된다 싶으면 미국서 온 사람들에게 “이민 갈 수 없느냐”고 열심히 묻는다.
그러다가 사정이 약간 호전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민문제에 대해 입을 꽉 다문다. 그러니까 재미동포가 서울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한국이 불안할 때다. 역설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분위기는 또 “이민 가겠다”로 기울어져 있다. 이유는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의 입김이 세지는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외국업체가 한국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생산업체들마저 중국 쪽으로 빠져나간다고 했다.
이렇게되니 실업자가 늘어날 수밖에. 대학교 졸업해도 취업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대학교 들어가기도 하늘에 별 따기지만 취직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는 것만큼 어렵다고 했다. 지방대학 출신들은 더 심한 모양이다. 대학 졸업 후 장사 계통으로 빠지는 젊은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친구들 중에는 아들이 어렵게 명문대학에 들어갔는데도 졸업 후 직장을 못 구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래 가지고서야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본인이 직장에서 구조조정 당하는 고민은 벌써 옛날 이야기고 지금은 자식들이 취업을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젊은층에서 실업자가 늘어날 때 그 사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꿈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리고 오늘 즐기고 보자는 향락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 정의가 어떻고 정직성이 어떻고 하는 것은 모두 빛 바랜 소리가 되어 버린다.
직장에서도 꿈이 있어야 오늘 어렵더라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법이다. 꿈이 없으면 상하관계도 엉망이 되어 질서가 잡히지 않는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윗사람 말이 먹혀 들어갈 리가 없다. 무질서는 항상 꿈이 없는 곳에서 생성되는 반동현상이다.
이런저런 사회모순을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종착역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금 같아서는 임기 마치기 힘들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어떤 이는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가를 한국인들이 한번 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지금이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통령의 할 일이 무엇인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아무리 유능한 대통령이라 해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지도자가 못되는 법이고, 아무리 무능한 대통령이라 해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만 있다면 유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법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케이스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나 지도자가 되지는 못한다. 히딩크처럼 리더십을 보여야 하고 2류팀을 일류로 끌어올릴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류 축구팀은 없다. 2류 감독이 있을 뿐이다.
한국의 불안은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선수가 감독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일류팀 능력을 가졌는데도 2류팀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지도자란 세상이 인정해 줘야 하는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지도자 노릇을 하려니 본인이나 나라 모두가 숨차고 힘들 수밖에 없다.
리더십 부재-이것이 지금 한국이 앓고 있는 병이고 이것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우리가 예상치도 않았던 대 정치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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