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정 서산대사가 우리 나라의 4대명산으로 동에 금강(金剛), 서에 구월(九月), 남에 지리(智異), 에 묘향(妙香)을 꼽았다. 그렇다고 한라, 백두, 설악 등 산이 명산 축에 못 낀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산도 보는 사람의 취향, 방향, 원근 심지어 아침에 보는 산과 저녁에 보는 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산이고 그곳에 기암 절벽이 있고, 나무들이 있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있으면 된다. 서울만해도 병풍 처럼 둘러싸인 남산, 북악산, 인왕산, 낙산을 걷다보면 명산 측에 못 낄 것도 없다. 웬만한 촌마을 주변에도 전설과 함께 명산은 있게 마련이다. 산과 들만이 아니다. 강과 바다가 다 수 놓은 듯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
1974년 1월 1일 스카이랩 4호에 탑승한 한 우주인이 우주를 돌다가 하도 아름다운 곳이 있어 수동 조작으로 435km 상공에서 촬영한 한반도에 사진이「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첫장에 실렸다.
설경인 태백 대간이 남북으로 뚜렷하게 뻗어있고, 금강산 일대로 보이는 부분은 안개 속에 자욱하다.
금강산을 천하에 명산으로 꼽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만 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산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신비가 그렇고, 철에 따라 산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도 신비를 더 해준다.
봄에는 금강산(金剛山), 여름에는 봉래산(蓬萊山), 가을에는 풍악산(楓嶽山), 겨울에는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르고, 위치상으로 내무(內霧)재의 서쪽을 내금강(內金剛), 동쪽을 외금강(外金剛), 바다에 솟아 있는 섬을 해금강(海金剛)이라 부른다. 내금강에 속한 비로봉(毘盧峰)의 높이는 해발 1,638m이고, 해금강에 총석정(叢石亭)에서는 쌍거쌍래하는 백구(白鷗)떼 보는 재미가 일품이다.
1. 금강산은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산이다.
염라대왕이 한 노인에게 「금강산을 구경 못하고 왔구먼…」 이렇게 묻자, 농부가 「처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바쁘게 농사 짓다보니…」 대왕이 「고생 많이한줄 나도 안다. 다시 저 세상에 보낼터이니 이번에는 편히 살면서 금강산을 꼭 구경하고 오렸다…」
우화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한번은 가 봐야 한다는 뜻이겠다. 중국인은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 보는 것을 소원했고, 일본인도 금강산을 보기 전에 천하의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고려조 때나 조선조 때나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이들 사신의 일정에는 금강산 관광이 끼어 있게 마련이다. 이들 행차를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달 동안 보살펴야하니 예부(禮部), 예조(禮曹)를 비롯한 육부(六部), 육조(六曹)는 물론, 행차 도중의 지방 관속들이 큰 혼역을 치르게 마련이다.
2. 금강산은 백문이불여일견의 산이다.
춘원 이광수는 「금강산유기」에서「금강산의 절경, 아직 내 붓은 이것을 그릴 공부가 차지 못했습니다. 눈도 미처 못 보거니 입이 능히 말할 수야, 금강산을 알려하면 가보소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고로 수많은 문인 화가 산악인이 금강산을 찾았지만 그저 감탄할 뿐 어떻게 표현할 줄을 모르고 뒤 돌아섰다. 그러나 어느 선사(禪師)는 ‘사람은 산에 대해 말이 없고, 우두커니 서서 돌아갈 줄 모르네’(山與人無語 淡淡欲忘歸)라고도 했다.
한국의 산 1,000개를 오른 ‘산 할아버지’가 금강산 봉우리가 몇 개인지 세기 위해 아흔아홉번 찾아갔다가 천개도 못 채우고 한 말은 “조용하게 머리 숙여 굽어나 볼 것이지 세어 보긴 왜 세어 보고 이름은 왜 붙여…" 였다.
금강산 타령에도 그렇고 널리 알려지기로는 비로봉을 비롯해 1만 2천봉이라 하지만 산봉우리가 정말 몇 개인지, 따라서 계곡이 몇 줄기인지도 모른다. 산봉우리와 바위의 이름도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봄가을에 따라 다르고, 아침저녁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바위 하나에 붙여진 이름도 수만 가지다.
3. 그러나 금강산은 지금 한을 많이 품고 있다.
금강산은 수많은 실향민들의 고향이다. 금강산 자락에 앉아 멀리 가물가물 보일 듯 한 고향 땅을 향해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북녘을 향해 「어머니…」 「아버지…」를 외치기도 한다.
금강산은 목적이지 무엇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산은 산, 물은 물’ 본연의 모습을 지니면 된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과 마의태자의 애화의 본고장이며, 장안사 신계사 등 108개의 사찰이 있다는 영산(靈山)이였다. 그런데 오늘날 금강산은 말도 많고 사연도 많다. “곡조 타령의 금강산이 푸렴 타령의 금강산"으로 변질된 것이다.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단체로 줄을 지어 금강산 관광 특구(特區) 내 몇몇 장소만을 보고 남쪽 사람이 경영하는 매점에서 선물 몇 개 사 들고 오는 것이 소위 오늘날의 금강산 관광이다.
내친김에 민박을 몇 일 하면서 관동팔경(關東八景)을 보고, 원산 송도에서 해수욕을 하고, 해당화로 덮인 명사십리도 걸어본다. 그리고 평양해주 백천 개성을 거치는 동안 온천도 하고 주막거리를 거닐면서 그곳 주민들과 세상 살아가는 얘기도 기탄 없이 나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 올 것인가.
/ikhchang@aol.com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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