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회자되는 우스갯소리 가운데 “한국이 자본주의를 하고, 중국이 사회주의를 하는 것은 세계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얘기가 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상술이 뛰어나고, 한국 사람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평등주의가 강한데 두 나라가 2차 대전이후 민족적 속성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남이 잘사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중산층도 스스로 부유층이라고 생각하고, 경제력으로 주체할수 없는 과소비와 사치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급 운동에 속하는 골프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고급 양품점의 명품 브랜드는 이 불경기에도 동이 나고 있다.
부자들이 따로 노는 문화가 거의 만들어져 있질 않다. 기껏해야 한번에 수천만원대의 고급 룸살롱에 가는 정도라고 할까. 미국에서는 부자와 중산층, 가난한자가 노는 장소와 물이 다르지만, 한국에서 그것을 구분하기란 극히 힘들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 평등적 요소가 강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에선 1949년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60년대 중반에 극좌적 문화혁명이 진행됐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겐 평등주의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화혁명때 실각됐던 등소평이 80년대에 집권하면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펼쳤다. 그는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인민에게 빵을 주는 게 중요하다며 인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는 문화 혁명의 이념을 타파하고 시장 경제제도를 도입했다.
다행스럽게 중국이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60년대에 한국은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해서 연간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80년대 등소평이 뒤늦게 시장제도를 도입했지만, 한국이 중국에 비해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2차 대전후 가난했던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의 길이 요즘들어 바뀌고 있다.
중국은 헌법상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자본주의화하고 있는데 비해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선 평등적이고, 복지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는 최근호에서 재미있는 글을 하나 올렸다. ‘한국은 사회주의인가(Is South Korea Socialist?)’라는 제목의 글은 “노무현 대통령의 386세대 참모진들이 사용자보다 근로자,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보다 유럽식 사회주의를 변호해왔다”고 썼다.
이 기사는 또 “노무현 정부는 노조가 시위를 벌이면 노동자에게 유리한 결과로 중재하는 양상을 보여왔으며, 새 정부의 사회주의적 성향이 노조의 강경 노선에 힘을 실어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던 노무현 정부가 최근 철도 노조파업에서 공권력을 투입, 강경대응한데는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이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다”고 한 지적에 충격을 받았다는 게 이 잡지의 분석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사회에 회자되는 우스갯 소리가 중국 대사에 의해 공식화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정부는 뉴스위크에 정정보도를 요청할 방침으로 알려져 있다. 대선 직후 전경련과 이념 논쟁을 벌인바 있는 노무현 정부는 사회주의라는 표현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물론 한국 정부는 사회주의 정부가 아니고,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출범초기에 노무현 정부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너무 왼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다.
경제를 매니지하는 주체는 기업인과 상인, 투자자 등 가진자들이다. 그들이 새 정부를 불안하게 보고 있을 때 경기 회복의 추진력이 상실된다. 한국의 성장 에너지가 미국보다 강한데도, 2/4분기 성장률이 1.9%대로 위축되고 하반기에 3%대의 저성장이 예상되는 것은 경제인들이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특소세를 깎아주고, 재정 투입을 늘리며,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등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의 정책 방향이 시장 경제를 중시한다고 밝혀 안팎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을 불식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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