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올 때 다짐한 비장한 각오는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로 이런 말이 있었다. 개정이민법에 따라 초청이민이 크게 늘기 시작한 70년대 초이다. “고향에 금송아지 안 묻어 놓고 온 사람 있나", “여기 와서 팔자에도 없는 이 일을 하다니…"
이민사회에서 자의(自意)에 의한 일터를 갖기란 쉽지 않다. 몰라서도 그렇고 알고서도 못했다. 그러나 여기 체면과 처지를 접어 두고 크게 변신한 사례가 있다.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드세요?』이렇게 묻자, 『내 일 말씀입니까. 아, 즐겁죠 즐겁고 말고요. 화학약품에 대해선 도사니 어떤 자국도 척척입니다. 깨끗한 옷을 줄 수 있고 장사도 잘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화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분의 소탈한 대답이다.
다음은 이와는 반대로 자의에 의해 일터를 갖은 사업가가 50줄을 눈앞에 두고 나도 할 수 있다는 투지와 노력으로 크게 변신한 사례이다.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항공업계 요직에 종사했던 그는 LA에 소재한 모 한의과 대학에 입학해 4년간 전과목 A학점, 한의사 자격 시험 차석이란 만학의 성과를 올렸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약 냄새를 맡으며 자라 그때의 기억이 나를 이렇게 바꿔 놓은 것 같다면서 한의사인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인술의 길’을 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민 1세라면 누구나 크던 작던 변신(變身)이란 과정을 한 두 번 겪게 마련이다. 위 두 사례도 있을 수 있는 사례일 뿐 이례적인 것도 아니다. 다른 점은 전자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평형(아카디아형) 변신이고, 후자는 이상(理想)의 계단을 타고 새 것에 도전하여 성공한 수직형(유토피아형) 변신일 뿐이다.
수평형이건 수직형이건, 교육수준 소득수준이 어떻건, 남이 어떻게 보던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가족 속에 내가 있고, 대인관계도 좋고, 빚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일단 이민에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할 것은 나는 “성공한 이민자인가"를 묻기에 앞서 나는 “행복한 이민자인가"를 먼저 떠 올려볼 일이다. 성공이 곧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처신을 잘못해 한인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거나, 가정 관리에 실패해 가정이란 우산에 구멍이 뚫렸다면 이것은 성공한 이민자라고 볼 수 없다. 처신과 가정의 실패를 보상할 성공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는 집안이 가난해 농장의 머슴살이를 하며. 집단을 쌓아 둔 헛간에서 때로는 빗방울을 맞으며 잠을 잤다. 그의 취미는 그림으로 헛간에 사는 쥐들을 그렸다. 그것이 뒤에 만화 ‘미키 마우스’가 된 것이다.
디즈니 말에 의하면 헛간 시절은 참으로 행복에 젖었던 ‘아카디아’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일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고, 잠자리가 있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주인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LA에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성공했지만 행복은 그곳이 아니고 집단을 쌓아 둔 헛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성공한 자리에 돈은 지천으로 깔려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행복은 거기에 없었다는 얘기다.
행복이나 성공에 대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책을 읽는 자신이 “작은 것, 평범한 것, 가까운 것"에서 행복하기를 배우고 느끼지 않는다면 헛수고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 내가 가진 좋은 점,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이미 내 안에 행복의 인자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인식 못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도하게 흐르는 <성공=돈>의 등식도 다시 재고의 대상이다.
세상에는 갖고 싶은 것을 갖고 행복한 사람도 있지만, 갖고 싶은 것을 갖지 않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것이 큰 것 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고 그 작은 양(量)의 변화가 질(質)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격언으로 이런 말이 있다. 「가득 채워진 작은 집, 잘 가꾸어진 작은 땅, 뜻대로 해주는 작은 아내, 그것이 내 큰 재산이다.」(A little house well fill’d, a little land well till’d, and a little wife well will’d are great riches.)
그리고 “행복은 가진 것과 비례할 수도 있지만 가진 것 이상의 욕망과는 반비례한다"는 등식도 새겨들을만 한 말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자녀를 훌륭히 키우는 비결은 돈을 멀리 하여 돈으로 안되는 일을 좀더 많이 터득시키는 일이었다. 돈으로 안되는 일이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요,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을수록 나쁜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역 앞에서 구걸로 연명했던 어린 시절 ‘따뜻한 옷입고, 학교 가는 학생들이 가장 부러웠다’는 워싱턴주 신호범 상원의원은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8,000가구를 직접 방문하면서 얻은 것은 “성공한 이민자란 행복한 가정을 꾸민자"란 교훈이였다고 한다.
/ikhchang@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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