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골.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다. 불광동이라는 이름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독박골로 더 잘 통했다.
돌이 많아 독박골이 되었다는 그 곳은 무허가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한 차례씩 트럭을 타고 남자들이 몰려와 허가 나지 않은 건물을 망치로 부수고는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은 가난했고 집달이를 붙들고 울부짖거나 하루걸러 일어나는 길거리 싸움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단독 주택이었다고 하지만 우리 집도 조그만 마당에 보라색 라일락 나무만 그럴 듯하게 피어있을 뿐 그들처럼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바닥만한 마당 한 가운데 세워진 라일락 나무 말고 우리 집 살림에 어울리지 않게 걸려있는 액자가 있었다. 그 액자 안에는 6.25 사변 때 소위였던 아버지가 세운 공으로 탔던 ‘무공훈장’ 수훈장이 들어 있다.
옷가지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초라한 벽면에 걸려있는 수훈장은 가난한 살림에 파묻혀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가난의 질곡이 어떻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난 시끄럽고 고상하지 못한 동네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아야 했던 나는 폐암으로 보훈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앙상한 뼈마디를 보면서도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한 채 또 다시 미국으로 와야 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한 달 뒤에 대전 국립묘지 안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행사 식순에 의해 아버지의 유골가루가 들은 단지를 안고 들어서는 어머니, 국화꽃 화환 앞에 놓여진 향불,
장교들의 선열에 대한 정중한 경례, 장엄하고도 절도 있는 의장대의 행렬.
아버지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바쳤던 젊음의 용기와 희생을 국가는 진정으로 예우했다.
파란 하늘을 가르는 트럼펫 소리는 가슴 밑바닥에 무겁게 머물렀다. 그 동안 아버지를 한번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했던 일들이 가슴 속 깊이 회한으로 몰려왔다.
농부들이 주먹밥을 날라 오면 먹고, 설사 가져와도 이미 삭아버린 밥찌기로 허기를 채우며 싸워야했던 20살 남짓한 젊은이의 생각은 오로지 조국의 운명이었다. 죽어있는 흑인의 배창자를 모르고 밟아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써도 행군을 계속해야하는 발은 짓물렀고 돌아가시는 날 까지 무좀 파우더는 늘 아버지 곁에 있었다. 같이 참전했던 동료들은 죽어갔다. 아버지는 종전 후에 전투 중에 고립되어 오도가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하 전원을 무사하게 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받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독박골을 가로지르던 큰 개천은 복개되어 구기터널까지 이어지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개천 양옆으로 들어섰던 무허가 건물들은 다 없어지고 봄이면 개나리꽃이 지천으로 만발한 전망 좋은 곳으로 변했다.
어머니 혼자 오도카니 살고 있는 그 집도 조만간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애증의 분리를 안고 있던 초록색 철대문 앞에 피어있던 라일락 나무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애석한 마음이다.
지금은 국가 유공자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 돌아가신 아버지 덕택에 어머니는 의료비를 비롯 여러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아버지께서 젊은 날 고생 한 대가를 어머니 혼자 남아 누리려니 ‘좋은 세상 두고 먼저 돌아갔다’고 날마다 울음이시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대전 국립묘지로 향하신다.
계룡 산맥에서 이어지는 산세를 좌우로 깨끗하게 단장된 국립묘지에는 햇빛이 고르게 퍼졌다. 비석 앞에 꽃다발을 꽂는 어머니의 손길은 위로의 눈물로 얼룩진다. 아직도 묶은 살림살이가 빼곡히 들어찬 안방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무공훈장’은 가난과 더불어 아버지를 원망했던 부끄러움 위에 놓여진 젊음의 진실이다.
이맘때면, 유월이면 정말 아버지가 못 견디게 그립다.
권소희
약 력
▲성신여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미주 크리스찬 문협, 한국 소설가
협회, 국제 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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