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J 인터내셔널의 정주훈(오른쪽) 사장과 한영진 매니저가 비디오테이프를 감는 와인드 기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아날로그 제품으로 틈새 시장에 진출한 한인 회사가 창업 5년만에 성공을 거둬 화제다.
뉴저지주 해켄색에 위치한 ‘BJ Int’l(사장 정주훈)’은 비디오테이프를 생산하는 업체다. 한국에서 비디오테이프 원단(일명 팬케익)을 수입해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주로 영화 복사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또 소매시장에 눈을 돌려 ‘99센트 디스카운트스토어’같은 할인점에 OEM 방식이나 자체 브랜드로 녹음되지 않은 비디오테이프를 판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엔 전형적인 아날로그 제품인 비디오 시장이 첨단 디지털 제품에 밀려 하향세라는 점에서 ‘BJ 인터내셔널’의 성공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너도나도 디지털 시대에 속속 합류하는 분위기에서 과연 타산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BJ 인터내셔널’의 정주훈 사장은 "미국 시장이 빠르게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고 있지만 다양한 계층에 따라 고유한 시장 영역이 있다는 시장조사 결과에 확신을 갖고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철강과 화학 분야의 ‘범주 물산’을 운영하고 있던 정 사장은 지난 98년 미국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한 뒤 미디어분야에 뛰어들기로 결정하고 창업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기존의 아이템과 다른 분야를 취급하고 싶었다고 한다. 범주 물산에서 취급하는 철강이나 화학 분야로는 미국내 시장 개척이나 경쟁이 되지 않아 고심 끝에 찾은 아이템이 미디어 산업분야였다.
대우(주)에서 오랜 동안 중화공 본부에서 무역업무를 해온 경험이 있어 한국산 비디오테이프 원단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품질 면에서 자신도 있었다.
한국의 새한이나 SK, LG, 코오롱 등의 비디오테이프 마그네틱 원단은 세계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을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BJ 인터내셔널’은 한국의 비디오테이프 원단을 들여와 비디오테이프 껍질(일명 하우스)에 감아 녹음되지 않은 테이프를 생산한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일반 소매시장이 아닌 영화사와 같은 대량으로 복사하는 업체에 넘겨진다.
기존의 비디오테이프 시장에서 60분 또는 120분 분량의 규격화된 품목이 있지만 대량으로 영화 등을 복사해 판매하는 소수계 영화복사업체들이 주고객이다. 또 회사의 판촉용 비디오테이프 등을 제작할 경우 불필요한 분량의 규격화된 비디오테이프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분량의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에 맞는 테이프 생산이 가능하다. 일종의 커스터마이즈(Customized) 제품이다.
정 사장은 "CD와 DVD 등 디지털 추세로 비디오테이프 시장은 분명 줄어들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또는 인종에 따라 비디오테이프를 필요로 하는 틈새 시장이 있다"고 설명한다.
미동부지역에서 한인 업체로는 유일한 ‘BJ 인터내셔널’은 현재 한달에 40만개(컨테이너 5개 분량)의 비디오테이프를 생산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성공하기까지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전문 기술자에 의존하는 기존의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 원단을 비디오테이프에 감는 기계인 최신형 ‘와인드’를 구입했다. 이 기계는 수동식 기계보다 2배 가까이 생산성이 좋으며 컴퓨터장치에 의해 테이프 감기는 압력이 일정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고장이 날 경우 이 기계를 고치는 비용이 워낙 비싸게 들었다. 정 사장과 한영진 매니저는 두툼한 기계 매뉴얼을 공부했다. 낮에는 기계를 돌리고 밤에는 기계를 공부하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이제는 기술자를 부르지 않고도 척척 고칠 수 있을 정도가 됐다.판매망을 확보하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어려움이 있었다.
’발품’을 팔아가며 사장이 직접 뛰어다니면서 홍보했다. 처음 판매할 때는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정 사장은 "할렘에도 겁없이 들어가 테이프를 판매했다"며 "호랑이굴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 ‘BJ 인터내셔널’의 제품이 입소문이 나면서 점차 판매망이 필라델피아와 커네티컷으로 확대됐다.’BJ 인터내셔널’은 지난해부터 순익분기점을 넘어 흑자에 들어섰다. 단순히 비디오테이프만을 팔던 판매 방식도 바꿨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CD와 DVD를 구입,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일종의 원스탑 샤핑 개념으로 비디오테이프 뿐아니라 CD나 DVD를 필요로 하는 구매업체에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취급 품목을 보다 다양화할 계획이다. 현재 중국과의 무역업무를 하고 있는 만큼 문구와 토이류를 추가하겠다는 것.
’BJ 인터내셔널’은 LA 등 서부지역에도 합작 공장을 설립했다. 중국인과 동업으로 ‘BJ 인터내셔널’ 제2공장을 만들었다.이밖에도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로 하고 UPS를 통해 소량의 비디오테이프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배달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BJ 인터내셔널’이 최근 가장 주안점을 두는 사업 아이템은 할인점에 진출하는 것이다.
대량으로 소비하는 영화 복사회사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할인점에 들어가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 사장은 성공 비결에 대해 "원단에서 경쟁력이 있었고 생산과 품질에서 퀄러티 콘트롤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소개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 처음 시작한 일이었지만 땀 흘린만큼 성과가 나오는 인생살이같다"고 말했다.그는 좋은 품질과 성실함으로 틈새시장에서 성공시대를 열었다.
<김주찬 기자> jckim@koreatimes.com
■ 정주훈 사장
정주훈 사장은 한국 대우(주)에서 12년간 상사 생활을 해왔다. 미국 지사 경험은 없고 일본 오사카지사에서 근무한 적은 있다.
지난 93년 한국에서 ‘범주 물산’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대우(주)에서 중화공 본부에서 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철강과 화학 아이템을 취급하고 있다.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에서 생활을 해오던 중 이곳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정사장을 미국에 뿌리내리게 했다.
한국내 대기업 상사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해오던 정 사장에게 이 사업은 인생살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다고 한다. 제조업 분야에 처음 일을 하면서 땀 흘린만큼 정확히 결과가 나오는 인생의 진리를 느꼈다는 것. "무역과 달리 한번에 대박을 터뜨리는 일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한만큼 수확을 거두는 제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한달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 사장은 "회사 홍보가 되면 더 많은 매출이 기록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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