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때 문학청년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기야 소싯적에 한번쯤 문학청소년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나의 문학에의 꿈도 사춘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사춘기(思春期)는 말 그대로 ‘사색의 봄’이자 ‘사고(思考)의 싹이 트는 시기’이다. 열 대여섯 살 때부터 시작된 나의 사춘기적 고민과 문학에의 꿈은 대학생이 되어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마치 열병처럼 뜨거워졌다. 밤새워 술을 마시며, 사랑과 문학, 인생과 진리를 논하며,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시와 소설의 형식을 빌어 습작을 하고, 동인지랍시고 책을 만들어 내고는 처음으로 활자화되어 나온 내 글에 야릇한 쾌감과 흥분을 느끼며 마치 작가가 된 듯 착각을 하기도 했다. 신문에 투고한 글이 실리자 은근히 우쭐대기도 하고, 어쩌다가 응모한 글들이 입상이 되어 받은 상금으로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퍼마시다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날리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 시절, 습작을 하며 젠 체를 하고 호기를 부리면서도 나에게는 사춘기 때부터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고민이 있었다. 난 왜 이럴까? 난 왜 이렇게 사는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삶이란? 행복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당시의 내 일기장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장식하고 있었다. 그 고민이 점점 깊어지면서 끄적거리던 습작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어대는 일에도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도대체 무슨 글을 쓴다는 말인가? 내가 내 자신을 모르면서 무슨 인생과 사랑, 문학을 얘기하고, 무슨 세상 걱정을 하며, 사회 정의를 얘기한단 말인가?
이러한 고민은 어느 날 또 다른 객기를 부리게 만들었다. 그건 확실히 그 이전의 객기보다 더한 객기였다. 마치 대단한 작가라도 되는 양 친구들 앞에서 ‘절필 선언(!)’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날 나의 술기운을 빌린 절필 선언은 이랬다:
"지금부터 나는 내 자신을 알기 전에는 절대로 글을 쓰지 않겠다. 습작은 물론, 일기마저도 쓰지 않겠다. 자신도 모르고 쓰는 글을 어디 누구에게 내놓고 보여준단 말인가? 아무리 아름답고 남들이 감명을 받는 글을 쓰고, 설사 노벨상을 받는 글을 쓰더라도 글쓰는 자가 자기 자신을 모르고 쓴 글이라면 그건 허접 쓰레기와 같다. 니들, 니 자신을 아나? 자신을 모르면서 글을 써서 발표한다는 것은 네놈들이 그렇게 씹어대는 속물들보다 더 못한 꼴같잖은 짓거리들이야. 허영심과 오만으로 꽉 찬 떨거지 같은 것들! 다 집어쳐, 집어치우라고!"
어쨌든 난 그날 이후로 정말 일기도 쓰지 않았다. 절망적이던 난 폐병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를 해버렸다. 군에서 견디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자못 비장한 각오로 군입대 신체검사장에서도 병을 숨기고 입대를 했었는데, 다행히도 제대할 때는 건강도 회복하고 마음의 안정도 찾았다. 그 후로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 철학과 여러 종교와 각종 수련단체를 기웃거리며 많이 방황하고 헤매기는 했지만, 드디어 그 문제로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동서양 성인들의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그 문제임을 눈치채게 되었으며, 유교와 도교, 특히 불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보니, 역시 난 문인이나 작가로서는 자질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글쓰기가 부끄럽다.
다들 문학청소년의 꿈을 저버리지 못해서일까? 주변에는 글을 쓴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무슨 잡지에 등단을 했다며 작가라며 명함을 찍어 건네는 사람도 있고, 글쓰는 직업을 가지고 여론을 선도해 나가는 듯한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미혹함이 없어야 할 불혹(不惑)의 나이 40을 넘기고,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50이 넘어서도 사춘기적 감상을 떨쳐내지 못하고, 허영심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려고 어설픈 글을 쓴다면 참으로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다.
노자(老子)는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言者不知)"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또 이렇게 글을 쓰며 아는 체 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또 다른 객기를 부린 이 부끄러운 글을 용서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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