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핵무기 보유국 수가 늘어가는 것을 뜻하는 핵 확산이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와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미국은 2차대전이후 자국의 세계적 영향력 확대와 유지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추구해왔다. 1980대 후반에 미국의 쇠퇴를 염두에 두고 전개된 ‘강대국 흥망’에 대한 대논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으로 하여금 소련의 붕괴로 얻은 군사적 유일초강대국의 지위 유지에 더욱 신경을 쓰게 만들고 있다.
핵전력(核戰力)은 단순하게 말해서 초강대국 미국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드골 대통령이 프랑스의 핵무장을 추진했을 때 미국이 그의 암살을 고려했던 사실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그의 핵무기 개발 추진과 연계시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 그 자체도 용납이 어렵지만 나아가 핵무기 보유를 원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이것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음을 더욱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핵국화(核國化)가 동북아 국제정치질서를 미국의 이익과 영향력 유지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일본의 핵무장 그리고 뒤이어 남한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핵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동북아 국가 모두가 핵무기를 가지게 되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극도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엄청난 자본력과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의 핵무장은 전통적 패권 경쟁자인 중국을 자극해서 일?중간의 핵 경쟁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러시아의 동아시아 핵전력 강화로 이어져 결국 미국까지도 핵무기경쟁에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핵군비 경쟁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미국의 또 다른 우려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이 미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전에 싹을 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핵능력이 미국의 선제공격에 보복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에 있다.
북한은 정권유지와 경제회생이 절대 절명의 목표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의 체제유지를 보장하지 않으면 북한의 생존은 늘 불안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소련의 붕괴에 미국의 작용이 절대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런 미국이 암암리에 북한의 고사(枯死)를 추구할 경우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에 의한 체제보장에 목을 매고 있다.
또한 엄청난 재원(財源)의 지속적 제공이 절대조건인 북한의 경제회생과 성장도 미국의 리더아래 있는 서구선진국의 도움 그리고 세계은행 등 사실상 미국의 지배 하에 있는 국제금융기구의 차관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시대통령의 당선이후 북한이 한동안 유화적인 행보를 계속했던 것이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북한은 박대통령 때의 경제개발 추진처럼 일본의 보상금을 기반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미국의 지원 아래 중국식 성장을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실패로 끝났는데 북한은 일본의 비협력적 태도가 기본적으로 미국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미국이 일본에게 대북강경노선에 협력토록 요구했기 때문에 북?일협상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 택한 것이 ‘벼랑끝 전략’이다. 전혀 비타협적인 부시정부를 자신들과의 협상 자리에 앉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으로 미국이 가장 염려하는 것을 건드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북한의 고민은 체제보장 및 경제회생이라는 목표와 핵주권이라는 수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조화시키느냐에 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때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데, 미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 포기할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남한에 비해 한수 위의 외교를 구사해온 북한으로서도 강경일변도인 미국에 대항해 시용할 수 있는 카드가 그렇게 다양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강경책이 유일하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인데, 강경하게 나갈수록 수그러들어야 할 북한이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라크 때문에 북한핵문제에 집중할 여력도 부족하다. 미국 내에서도 부시정부의 강경일변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전에는 시키는 대로 하던 남한도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내려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어쨌든 우리는 자국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두 게이머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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