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봄이 들어온다.
풀 내음 히야신스 내음 수선화 내음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햇살 쏟아지는 아침
우리아가 꽃밭에는
수선화의 노랑개비 웃음이 가득
아가와 나는 함께 꿈을 심었고
아이와 나는 함께 행복을 한 다발 꺾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긴다. 아침마다 부엌 창문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 이 세상에 저 밝은 초봄의 풀 색깔과 연노랑 수선화의 색깔보다 더 행복한 색깔이 있을까?
그도 그럴것이 우리 부엌 창밖에는 저만치 뜰 건너편에 한 십년전 우리 아가의 놀이터로 만든 잔디밭과 그 한곁을 돌담으로 둘러싼 멋드러진 꽃밭이 한눈에 보이는데 한밭 가득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도 이른둥이 늦둥이 키다리 작다리 흰술 노랑술 분홍술 빨강술 등등 가지각종의 수선화 한 백송이가 한달이 넘도록 피고있는데 어찌나 밝고 싱그러운지 아직도 새롭기만 하다.
수선화 - 작은 노랑색의 기적! 그 꽃무리는 한눈에 단박 겨우내 찌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활짝 펴준다. 정말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오래 기다렸지요. 드디어 봄이에요. 이 따뜻한 햇빛 속으로 나와 우리를 보아주세요. 겨우내 단장했답니다." 라고.
그런데 이 행복한 꽃들의 웃음에 정말 어린이들의 웃음이 한때는 담겨 있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발치 자그만 언덕머리에 사는 우리는 넓은 땅이 있으니 해마다 꽃을 심고 나무를 심었는데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다.
나는 우리아이와 이웃아이들을 거느리고 골목대장(?) 노릇을 단단히 해 먹었다. 꽃 심는 계절엔 주말마다 아침이 되면 이웃집 아이들이 찾아오곤 했다. "제니이, 오늘도 꽃을 심나요?" "응, 그러자꾸나" "야! 신난다" 나는 서둘러 달구지에 꽃삽이니 꽃뿌리니를 싣고, 아이들도 태우곤 트랙터를 몰고 여기저기 헤메이며 꽃뿌리를 심었다. 시끌벅적한 꽃꾼들의 행렬...
한길가 우체통 언저리에, 오분의 일 마일 정도되는 드라이브웨이 가장자리에, 창밖 언덕에, 인적없는 오솔길 나무밑에, 우리는 마음내키는 대로 여기 한 송이 저기 한 더미씩으로 심었는데, 세월은 흘러 이젠 정말 탐스럽게 꽃피는 언덕마을이 됐다. 우리는 이렇게 해마다 우리집에도 이웃집에도 꽃을 심었다. 호숫가 벤치곁에도 심고, 이웃에 고풍스러운 정자가 하나 들어서자 그 주위에도 심었다. 몇 해전 그중 한 아이가 병이 나 누웠을 때 우리는 그 아이의 창밖에 제일 크고 밝은 노랑색 수선화 한 무더기를 심어주기도 했다.
한바탕 심고 나면 나는 배고프다고 큰소리 빵빵치는 아이들을 집으로 싣고와서 ‘티 파티 (Tea Party)’를 한다고 법석을 떨곤 했다. 우리는 발코니에 아이들 전용 소형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를 차려 놓고 소꿉장난 같은 티 파티를 했었지... 이제 다 커 버린 그 아이들은 꽃 심자고 찾아오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우리는 풍류를 심고 사랑을 심고 꿈과 행복을 심은 것 같다.
우리가 꽃을 심은 자리마다 이젠 한 다발의 꽃이 피어나고 연분홍 구름꽃같은 자두나무가 줄을 서고 자둣빛 테를 쓴 공주님같은 꽃을 함박 담은 매그놀리아가 피어난다. 모두 아이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서 멋진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나는 꿈꾸어 본다. 먼 훗날, 어른이 된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세대의 꼬마들을 이끌고 꽃들을 심겠지. "아빠는 어떻게 이 꽃뿌리들을 심을 줄 알아요?" 하고 물으면 "응, 제니이한테 배웠단다." "제니이가 누군데요?" "아빠가 어릴 적 이웃집 아줌마란다. 우리는 친구처럼 같이 꽃도 심고, 티 파티도 했었어. 참 재밌던 시절이었지..." 나의 꿈은 참 소박하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꽃을 심었는데 이제는 남편과 단 둘이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수선화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그 떠들썩한 웃음이 귀에 쟁쟁 울린다. 그들도 오가며 이 꽃들을 보며 그 시절을 가끔 생각할까?
해질 무렵 꽃일을 마무리하다 뜰옆 계단 난간밑에 뭔가 눈에 띄어 살펴보니 청보라색 아기 히야신스가 피려하고 있다. 각각 다른 크기의 애기 장난감같이 앙증스레 쬐끄만 화분 세 개속에! 아빠화분, 엄마화분, 분홍색 테를 두른 아가화분...
우리아이의 걸작품이다! 어느틈에 심었을까. 정말이지 이 아이는 너무나 큰 행복의 꽃다발을 느닷없이 내게 안겨주곤 한다. 나는 그저 데리고 꽃을 심은 것뿐인데... 집에 들어와 창 밖을 보니 벌써 깜깜해졌다. 달콤한 피로가 나를 사로잡는다...
(Happy Birthday, Little Chick! -from Momsie Doo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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