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항상 ‘다름’과 마주친다. 나와는 다른 모든 것들과 새롭게 시작하고 협상하고 경쟁하고 때로는 격론을 벌인다. 다르기 때문에 조화가 가능한 것을 망각하면서 우리는 천편일률적인 획일성에 중심을 두고 ‘같아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극도의 문명 세계에서 지금 부딪치고 있고 앞으로 더욱더 심각하게 될 문제 가운데 하나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상대주의란 어떠한 주장이나 이론이 그 자체로 보편 타당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어떤 지역, 어떤 시대, 또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다시 말해 어떤 상황이나 시대와는 ‘별개로’, ‘떨어져서’ 참인 것은 없고, 참된 것이란 언제나 무엇과 상관해서 참되다고 보는 관점을 상대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을 취할 때 당연히 보편적 진리, 절대적 진리란 없다고 봐야 한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을 쓴 것은 이런 문제와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의 취향이나 구미에 대해 사실 왈가왈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미적 판단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잣대를 가지고 ‘아, 이 작품이 좋다 읽어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가운데 칸트가 들고 있는 것은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란 것이다. 어떤 것이 아름답고 추하다고 보는 데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지각 의식, 즉 어떤 ‘상식’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상식이란 다르게 말하자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의식이다. 현대사회가 파편화되고 의사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것도 이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치 못한데서 오는 극히 편견에 치우친 분파주의 또는 집단이기의 산물인 것이다. 상식은 획일적 사고체계의 집산이 아니라 각기 다른 것을 상호 존중하는 데서 오는 보편타당한 가치체계의 지각 능력이다.
전쟁을 경험한 자긍심과 충성, 그리고 권위에 대한 존경으로 뭉친 구세대(Veterans), 전후부터 1960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 일을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X세대, 컴퓨터와 자유분방함으로 무장한, 디지털문화속에서 성장한 N세대 등 우리 사회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가치관과 경험으로 많은 갈등을 겪는다.
세대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또 이는 우리 모두에게 지각있는 사회적 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함의와 상식은 각기 다른 세대, 즉 다름을 인정하는 개개인의 분별력과 지혜를 갈급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자기의 결정과 선택은 자신의 삶에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선택해야 할 구체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배경, 가치관과 타고난 재능 등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삶의 양상이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들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자신이 보람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삶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삶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한 삶이 될 수 없다. 반대로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삶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 그것도 보람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삶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신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삶, 즉 자기 인격완성의 정신이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곧 나와는 다름을 인정하는 호연지기의 정신인 것이다.
오늘날의 지구촌은 국제화, 세계화가 더욱 가속되고 있다. 인적, 물적 자원과 정보의 상대주의를 제거한 국경 없는 교류가 그것이다. 국제화 시대의 세계주의라는 보편성과 다인종이 어우려져 사는 이곳에서 민족주의나 한인사회라는 울타리는 온당치 않다. 한인사회는 물론 교계 내부에서조차 다름을 존중하지 못하고 편견을 씌우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면 이는 시류(時流)를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존중치 않는다면 끊임없는 분쟁을 양산하게 될 것이며 결국 부메랑으로 화를 자초할 것임이 자명하다. 우리 모두가 가슴을 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겸양과 호연지기의 정신을 가져야 할 때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디지탈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편집·취재부장 ej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